예기를 읽다 1632

혼의 44-3, 혼례한 이튿날에 일찍 일어나 신부는 목욕하고

昏義 第四十四(혼의 제사십사) 44- 3 夙興 婦沐浴以俟見 質明 贊見婦於舅姑 婦執笲 棗栗段修以見 贊醴婦 婦祭脯醢 祭醴 成婦禮也 舅姑入室 婦以特豚饋 明婦順也(숙흥 부목욕이사견 질명 찬현부어구고 부집변 조율단수이현 찬례부 부제포해 제례 성부례야 구고입실 부이특돈궤 명부순야). 혼례한 이튿날에 일찍 일어나 신부는 목욕하고 시부모에게 뵙기를 기다린다. 해돋이 때 예를 돕는 자는 신부를 시부모에게 뵙게 한다. 신부는 번을 들고 ‘대추’ ‘밤’ ‘건육’을 담은 뒤 대추밤을 갖고서 시아버지에게 뵙고 건육을 가지고 시어머니를 뵙는다. 신부가 이미 시부모에게 보인 후에는 시부모는 마땅히 이에 답례해야 한다. 그러므로 돕는 사람은 시부모 대신 감주를 따라서 신부에게 답례한다. 이 때 신부는 문과 창문 사이에 있는 자리의 ..

예기를 읽다 2022.09.08

혼의 44-2, 혼례의 날짜가 정해지면 친영의 예를 거행한다

昏義 第四十四(혼의 제사십사) 44- 2 父親醮子而命之迎 男先於女也 子承命以迎 主人筵几於廟 而拜迎于門外 壻執鴈入 揖讓升堂 再拜奠鴈 蓋親受之於父母也 降出 御婦車 而壻授綏 御輪三周 先俟于門外 婦至 壻揖婦以入 共牢而食 合巹而酳 所以合體同尊卑 以親之也(부친초자이명지영 남선어여야 자승명이영 주인연궤어묘 이배영우문외 서집안입 읍양승당 재배전안 개친수지어부모야 강출 어부거 이서수수 어륜삼주 선사우문외 부지 서읍부이입 공뢰이식 합근이윤 소이합체동존비 이친지야). 혼례의 날짜가 정해지면 친영의 예를 거행한다. 남자 집의 아버지가 몸소 그 아들에게 초하고 명하기를 몸소 여자를 마중하도록 한다. 이는 남자가 모든 일에 여자에 앞서기 때문이다. 그 아들은 아버지의 명을 받아, 여자집에 이르러 여자를 마중한다. 여자집의 주인은..

예기를 읽다 2022.09.08

혼의 44-1, 혼례는 장차 두 성의 좋음을 합하여

昏義 第四十四(혼의 제사십사) 44- 1 昏禮者 將合二姓之好 上以事宗廟 而下以繼後世也 故君子重之 是以 昏禮納采問名納吉納徵請期 皆主人筵几於廟 而拜迎於門外 入揖讓而升 聽命於廟 所以敬愼重正昏禮也(혼례자 장합이성지호 상이사종묘 이하이계후세야 고군자중지 시이 혼례납채문명납길납징청기 개주인연궤어묘 이배영어문외 입읍양이승 청명어묘 소이경신중정혼례야). 혼례는 장차 두 성의 좋음을 합하여 위로는 종묘를 섬기고 아래로는 후세를 잇는 것이다. 그렇기에 군자는 이를 소중히 한다. 그러므로 혼례에는 ‘납채’ ‘문명’ ‘’납길‘ ’납징‘ ’청기‘ 모두 주인이 사당에 연궤하고 문 밖에서 절하고 맞는다. 들어와서 읍양하여 오르게 하고 명을 사당에서 듣는다. 공경하고 삼가서 혼례를 무겁고 바르게 하는 때문이다. [시조 한 수] 혼례..

예기를 읽다 2022.09.07

관의 43-3, 어머니를 뵐 때는 어머니께서 절하시고

冠義 第四十三(관의 제사십삼) 43- 3 見於母 母拜之 見於兄弟 兄弟拜之 成人而與爲禮也 玄冠玄端 奠摯於君 遂以摯見於鄕大夫鄕先生 以成人見也(현어모 모배지 현어형제 형제배지 성인이여위례야 현관현단 전지어군 수이지견어향대부향선생 이성인견야). 어머니를 뵐 때는 어머니께서 절하시고 형제에게 보일 때에는 형제가 절한다. 성인(다 자란 사람)이 되었으므로 함께 예를 하는 것이다. 현관과 현단을 입고 임금에게 폐백을 바치며 폐백을 가지고 고향의 대부와 선생에게 보이니 이로써 성인됨을 보인 것이다. [시조 한 수] 관례를 끝내고 김 재 황 어머닐 뵙게 되면 어머니가 어찌하나, 어머닌 아들에게 왜 이렇게 절하는가, 까닭은 성인 됐기에 그리하는 거란다.

예기를 읽다 2022.09.07

관의 43-2, 그러므로 관레는 조계 위에서

冠義 第四十三(관의 제사십삼) 43- 2 故冠於阼 以著代也 醮於客位 三加彌尊 加有成也 已冠而字之 成人之道也(고관어조 이저대야 초어객위 삼가미존 가유성야 이관이자지 성인지도야). 그러므로 관레는 조계 위에서 이는 아버지를 대신하여 일을 하려고 한다는 걸 나타낸다. 객위(문의 서남편)에서 초례하고 세 번을 더해서 더더욱 높아진다. 이렇듯 더해서 이루어짐이 있는 것이다. 이미 관례를 하고 손님이 ‘자’를 지어주니 이는 성인(다 자란 사람)의 길이다. [시조 한 수] 관레 김 재 황 조계로 올라가서 하는 것은 부친 대신 관례를 행한 후엔 객위에서 초를 하네, 성인에 대한 존경을 꼭 보이기 위해서.

예기를 읽다 2022.09.07

관의 43-1, 예전에 관례에 날을 점치고 손님을 점친 것은

冠義 第四十三(관의 제사십삼) 43- 1 古者冠禮筮日筮賓 所以敬冠事 敬冠事所以重禮 重禮所以以爲國本也(고자관례서일서빈 소이경관사 경관사소이중례 중례소이위국본야). 예전에 관례에 날을 점치고 손님을 점친 것은 관의 일을 삼간 때문이요, 관의 일을 삼간 것은 예가 무거운 때문이요 예를 무겁게 한 것은 나라의 근본이 되기 때문이다. [시조 한 수] 예전에 김 재 황 손님을 점치는 건 관의 일을 삼간 까닭 관의 일 삼가는 건 무거움이 크기 때문 예의를 무겁게 한 건 나라 근본 되기에.

예기를 읽다 2022.09.07

대학 42-64, 나라의 우두머리로서 '돈이나 값나가는 것'의 씀에 힘쓰는 사람은

大學 第四十二(대학 제사십이) 42-64. 長國家 而務財用者 必自小人矣 彼爲善之 小人之使爲國家 災害竝至 雖有善者 亦無如之何矣. 此謂國 不以利爲利 以義爲利也.(장국가 이무재용자 필자소인의 피위선지 소인지자 위국가 재해병지 수유선자 역무여지하의. 차위국 불이리위리 이의위리야) -나라의 우두머리로서 ‘돈이나 값나가는 것’의 씀에 힘쓰는 사람은 반드시 ‘마음이 좁은 사람들’ 때문이다. 그가 ‘마음이 좁은 사람들’이 하는 짓을 착하다고 여기며 ‘마음이 좁은 사람들’로 하여금 나라를 다스리게 하면 ‘물과 불의 나쁜 일’이 함께 닥쳐오게 된다. 비록 착한 사람이 있어도 또한 어찌할 수 없게 된다. 이를 일컬어서 ‘나라는 이로움으로써 이로움을 삼지 아니하고 의로움으로써 이로움을 삼는다.’라고 한다.(김재황 역) [시조..

예기를 읽다 2022.09.07

대학 42-63, 맹헌자가 말했다. "'수레를 끄는 네 필의 말'을 기르게 되면-"

大學 第四十二(대학 제사십이) 42-63. 孟獻子曰 ‘畜馬乘 不察於鷄豚 伐氷之家 不畜牛羊 百乘之家 不畜聚斂之臣 與其有聚斂之臣 寧有盜臣’ 此謂國 不以利爲利 以義爲利也.(맹헌자왈 ‘축마승 불찰어계돈 벌빙지가 불축우양 백승지가 불축취렴지신 여기유취렴지신 영유도신.’ 차위국 불이리위리 이의위리야) -맹헌자가 말했다. “ ‘수레를 끄는 네 필의 말’을 기르게 되면 (대부가 되면) 닭이나 돼지를 살피지 않는다. 얼음을 떠서 쓰는 (높은 벼슬아치) 집안은 소나 양을 기르지 않는다. ‘네 필의 말이 끄는 일백 대의 수레’를 지닌 집안에서는 ‘나라사람의 피와 땀을 짜내는 아래 벼슬아치’를 두지 않는다. ‘나라사람의 피와 땀을 짜내는 아래 벼슬아치’를 두기보다는 차라리 도둑질하는 아래 벼슬아치를 두는 게 낫다.” 이를 일..

예기를 읽다 2022.09.07

대학 42-62, 아직 위에서 '어짊'을 좋아하는데

大學 第四十二(대학 제사십이) 42-62. 未有上好仁 而下不好義者也 未有好義 其事不終者也 未有府庫財 非其財者也.(미유상호인 이하불호의자야 미유호의 기사부종자야 미유부고재 비기재자야) -아직 위에서 ‘어짊’을 좋아하는데 아래가 ‘옳음’을 좋아하지 않은 적이 없다. 아직 (아래가) ‘옳음’을 좋아하는데 (위에서 꾀하는) 그 일을 마치지 않은 적이 없다. 아직 모으거나 쌓아두는 곳에 ‘돈이나 값나가는 것’이 있는데 그 ‘돈이나 값나가는 것’ 그대로가 아니다.(김재황 역) [시조 한 수] 대학에 대하여 62 김 재 황 윗물이 맑아야만 아랫물도 맑게 되듯 윗사람이 어질어야 아랫사람 올바르네, 마음이 정의로우면 안 될 일이 있겠나.

예기를 읽다 2022.09.07

대학 42-61, 어진 사람은 '돈이나 값나가는 것'으로써

大學 第四十二(대학 제사십이) 42-61. 仁者 以財發身 不仁者 以身發財(인자 이재발신 불인자 이신발재) - 어진 사람은 ‘돈이나 값나가는 것’으로써 몸을 높직이 일으키고, 어질지 못한 사람은 몸으로써 ‘돈이나 값나가는 것’을 높직이 일으킨다.(김재황 역) [시조 한 수] 대학에 대하여 61 김 재 황 돈이라 하는 것은 쓰기 위해 버는 것을 벌 줄은 잘 알아도 쓸 줄은 알지 못하니 무작정 돈만 벌다가 그 인생이 끝나네.

예기를 읽다 2022.09.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