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쥬르, 나폴레옹

(28) 독야청청 책을 읽다

시조시인 2008. 9. 22. 22:16

(28)

나폴레옹은 좋은 아이디어 하나를 생각해 냈습니다. ‘아이디어’(idea)는 ‘착상’이나 ‘발상’이나 ‘고안’ 등을 나타냅니다. ‘착상’(着想)은 어떤 일이나 계획 등에 대한 ‘새로운 생각이나 구상이 마음에 떠오르는 일, 또는 떠오르는 그 생각이나 구상’을 뜻하고, ‘발상’(發想)은 ‘궁리하여 새로운 생각을 내놓는 일, 또는 그 새로운 생각’을 말하며, ‘고안’(考案)은 ‘새로운 방법이나 물건을 연구하여 생각해 냄, 또는 그것’을 이릅니다.

장황하게 말을 늘어놓으니, 자못 궁금하지요? ‘장황(張皇)하다’는 ‘번거롭고 길다’를 나타냅니다.

나폴레옹은 선생님에게 부탁을 드림으로써 운동장의 한 구석에 조그만 땅을 나누어 받았습니다. 그리고는 가까운 숲에서 작은 나무 한 그루를 옮겨다가 그 곳에 심었습니다. 문득 ‘정송오죽’이란 말이 떠오릅니다. 여기에는 동음이의의 두 말이 있습니다. ‘동음이의’(同音異義)는 ‘글자의 음은 같으나 뜻이 다름’을 말합니다. 그런가 하면, ‘동음이자’이기도 합니다. ‘동음이자’(同音異字)는 ‘발음은 같으나 글자가 다른 것, 또는 그 글자’를 이릅니다. 즉, ‘정송오죽’(正松五竹)이라고 하면 ‘소나무는 정월에 옮겨 심고 대나무는 오월에 옮겨 심어야 잘 산다.’라는 뜻입니다. 그리고 ‘정송오죽’(淨松汚竹)은 ‘깨끗한 땅에는 소나무를 심고 지저분한 땅에는 대나무를 심는다.’라는 말입니다. 그러나 그 곳이 프랑스이므로, 나는 나폴레옹이 심은 나무가 ‘마로니에’였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마로니에’(marronnier)는 갈잎큰키나무입니다. 잎의 모양이 손바닥처럼 생겼고 겹잎입니다. 열매는 ‘마롱’(marron)이라고 부르는데, 그 말은, ‘밤’(栗)이라는 뜻입니다. 이 열매에는 가시가 있고, 단맛이 높습니다. 우리나라의 밤과 같이, 파리에서는 구워서 팔기도 한답니다. 지중해 연안이 원산지인 나무이지요. 이탈리아나 프랑스 등지에서 가로수로 많이 가꾸고 있습니다. 흰 바탕에 붉은 무늬가 있는 꽃이, 오뉴월에 핍니다.

우리나라에서는 ‘마로니에’와 꼭 닮은 ‘칠엽수’(七葉樹)라는 나무를 쉽게 볼 수 있습니다. 칠엽수는 일본이 원산지입니다. 두 나무를 촌수로 따진다면 사촌쯤 될 테지요. ‘촌수’(寸數)는 ‘친족 사이의 멀고 가까운 관계를 나타내는 수’를 말합니다.

그러면, 우리나라에서는 촌수제도가 언제부터 시작되었을까요? 확실하게는 알 수 없습니다. 다만, 기록에 의하면, 12세기까지 거슬러 올라갑니다. 그리고 조선시대의 경국대전(經國大典)에 ‘종형제’(從兄弟)를 ‘4촌 형제’라고 하며 ‘종숙’(從叔)을 ‘5촌숙’이라고 한 기록이 있습니다. 왜 ‘촌’이라고 하였는지에 관해서도 자세히 알 수가 없습니다. 짐작하건대 ‘촌’이 우리말로는 ‘대나무의 마디’를 의미하기 때문에, 친족 사이의 ‘마디’라고 생각하여 멀고 가까움을 표시한 듯합니다.

두 나무 중에서 잎 뒷면에 털이 많이 나 있는 종류가 ‘마로니에’입니다. 또한, ‘칠엽수’는 열매가 매끈하지요. 심어 놓은 나무는, 문실문실 잘 자랐습니다. ‘문실문실’은 ‘나무 따위가 죽죽 뻗어서 자라는 모양’을 나타냅니다. 그리고 해가 바뀌었을 때에는 제법 잎이 무성해져서 햇빛을 가릴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되자, 나폴레옹은 그 나무 둘레에 울타리를 친 다음, 누구를 막론하고 그 안으로 들어가지 못하게 했습니다. ‘막론’(莫論)은, 본래의 뜻으로 본다면 ‘더 이상 의논을 않고 그만두다.’라는 뜻이지만, 지금은 본뜻 외에도 ‘이것저것 따져서 말할 것도 없이, 말할 나위도 없이’ 등의 말로 쓰이고 있습니다.

그는 심심파적으로 그러는 게 아니었지요. ‘심심파적’(-破寂)은 ‘심심하고 한적한 시간을 깨뜨린다(破).’는 뜻으로 ‘심심풀이’와 같은 말입니다. 지금은 ‘할 일도 없고 재미 볼 일도 없어서 시간을 보내기 위하여 하는 짓’을 가리킵니다.

그렇게 만들어 놓고 보니, 근사합니다. ‘근사(近似)하다.’의 본뜻은 ‘거의 같다.’ 또는 ‘비슷하다.’이고, 바뀐 뜻은 ‘주로 어떤 사물의 모양이 보기 좋거나 훌륭할 때에 칭찬이나 감탄의 뜻’으로 쓰는 말입니다.

나폴레옹은 틈만 나면 나무 밑의 울타리 안으로 들어가서 독야청청으로 책을 읽었습니다. ‘독야청청’(獨也靑靑)은 ‘홀로 푸르다.’는 뜻이고, 더 나아가서 ‘홀로 높은 절개를 지켜서 늘 변함이 없음’을 이릅니다. 신선이 따로 없이, 독서삼매에 빠지곤 했지요. ‘독서삼매’(讀書三昧)는 ‘오직 책 읽기에만 골똘한 경지’를 가리킵니다. 책을 읽는 일이, 외돌토리인 그에게는 더없는 즐거움이었습니다. 문득, ‘위편삼절’이란 말이 생각납니다. ‘위편삼절’(韋編三絶)은 ‘독서에 힘씀’을 이르는 말입니다. 공자가 주역(周易)을 즐겨 읽어서 책의 가죽 끈이 세 번이나 끊어졌다는 옛 일에서 이 말이 생겼다고 합니다.

참으로, 재미있는 책을 읽기 시작하면 깨가 쏟아집니다. 다른 곡물과는 달리, ‘깨’는 추수할 때에 한 번 살짝 털기만 해도 우수수 잘 떨어집니다. 이처럼 거두어들이기가 쉽기 때문에 깨를 털 때마다 깨가 쏟아지는 재미가 유다릅니다. 그러므로 ‘깨가 쏟아진다.’는 ‘오붓하고 아기자기하여 매우 재미있다.’는 말입니다. 흔히 재미있는 일이나 신혼초기의 생활 등을 이야기할 때에 ‘깨가 쏟아진다.’는 말을 사용합니다. 나폴레옹이 그처럼 큰일을 할 수 있었던 것은, 어려서부터 이처럼 호학불권했기 때문입니다. ‘호학불권’(好學不倦)은 ‘학문을 좋아하여 책 읽기에 게으름이 없음’을 이릅니다.(김재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