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처럼 구름처럼

관악산 산행기(11)

시조시인 2010. 5. 24. 22:14

 

 계단을 오르다가 관악사지를 내려다보며 사진 한 장을 찍었다. 다시 확인하는 작업이다.  땀 흘리며 올라온 오늘의 보람을 여기에서 느껴 볼 심산이다.

 

 나무 계단을 쉬어 가며 올라가니 팻말이 나타난다. 아하, 여기에 연주샘도 있구나! 저 아래 사람들이 여럿 서 있던 곳이 아마도 거긴가 보다. 여기에서 좌회전을 하여 걸어가면 연주암이다.

 내가 지금까지 힘들게 올라온 그 아래를 가리키고 있는 팻살이다. 관악사지까지는 100미터이고, 연주샘까지는 200미터란다. 그러면 조금 전에 내가 있던 관악사지에서 연주샘까지의 거리는 100미터 정도가 된다.

 

 법당 하나가 곧 나타난다. 가까이 다가가서 기웃해 보았는데, 그 안으로 들어가서 절을 올리는 사람도 있었다. 싯다르타는, 죽기 직전에 '아난다'에게 이렇게 말했다. "내가 없더라도 다르마를 스승으로 삼고 정진하라."

그 말이 나의 귀에는 쟁쟁한데, 사람들은 그저 절하며 복을 빈다.

 아, 어제가 사월초파일이었구나. 연등이 나를 반긴다. 밤이라면 더욱 아름다울 터인데-. 연등이라면 '가난한 노파가 구걸한 돈으로 마련하여 달아 놓은 게 가장 밝게 타더라.'는, 이야기가 생각난다.

 연주암의 모습이 조금씩 드러나고 있다. 절 지붕이 참으로 멋지다. 그 한가운데에 붉은 연등이 둥실 떠 있다. 갑자기 두 손을 모으고 '나무아미 타불'을 외고 싶어진다.

 연주암 대웅전을 보려고 가다가 오른쪽의 법당 하나를 만난다. 처마 아래에 매다라 놓은 연등이, 마치 소녀가 꽃단장을 한 모습처럼 내 눈에 비친다.

 

 여기에도 범종이 있다. 단청이 아름다운 범종각은 마음을 편안하게 만든다. 저 종이 힘껏 울면 가슴이 찌르르해진다. 마음속에 막혔던 모든 찌꺼기가 금방 시원하게 뚫릴 듯싶기만 하다.

 

 대웅전 잎의 아름다운 연등들 모습이다. 그런데 그 모습이 낯설지가 않다. 왜 그럴까? 오호라, 어느해 가을의 곶감 널어 말리는 정경이 문득 떠오른다. 곶감과 연등이라니, 그게 잘 어울린다.

 여기까지 오느라고 발이 제일 고생했다. 어디로 가서 잠시 쉬어야 하겠는데, 마침 절의 툇마루에 자리 하나가 보인다. 나는 빠른 걸음으로 가서  걸터앉는다. 편안하다. 그 앞에는 과천으로 가는 계단이 있다. 그 계단을 씩씩하게 딛고 내려가면 과천에 이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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