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연지 솔이라고나 할까? 아름다운 꽃이 눈길을 이끈다.
시를 쓰는 이유
김 재 황
요즘 ‘표절시비’로 우리 사회가 시끄러운 것 같다. 어느 한 사람의 작품 중에 표절한 내용이 있다고 하여 모든 문인들을 이상한 시선으로 보는 사람도 있다. 이런 일은 글을 써서 돈을 벌겠다는 일부 대중문인들 때문에 생겨나는 일이다.
비유컨대, 나무나 풀이 아름다운 꽃을 피우는 것은 단순히 종족 보존의 목적을 실현하기 위해서이다. 그런데 그 꽃이 아름답기 때문에 사람들이 좋아하고 사랑한다. 그렇다고 나무나 풀이 좋아할까? 나무나 풀은, 사람이 좋아하든 말든 아무 관심이 없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아름다운 꽃을 찬양하고 더욱 아름다운 꽃을 피우기를 바란다. 그러한 사람의 욕심 때문에 억지로 풀과 나무를 개량하여 화초로 삼기도 한다. 이런 화초들에게서는 본래의 목적인 ‘종족 보존’을 망치게 되는 경우도 종종 볼 수 있다. 과연 이게 바람직한 일인가.
시인은 선비이다. 그러므로 시인이 시를 쓰는 이유는 ‘수신’에 있다. 다시 말하면 ‘수신’의 한 방편으로 시를 창작한다. 그러나 그 시가 순수하기 때문에 독자가 생기게 된다. 결코 시인은 독자를 의식해서 시를 쓸 수도 없고 써서도 안 된다. 시로써 돈을 벌겠다는 생각을 가지는 순간, 시는 순수성을 잃어버린다. 그건 더 이상 시가 아니다. 다시 강조하거니와, 시인은 독자가 있든 없든 시를 써야 한다. 시의 목적이 ‘수신’에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 ‘시’는 ‘상품’이 아니다. 그러니 시인에게 ‘표절’이란 있을 수가 없다.
풀과 나무가 ‘종족 보존’의 목적으로 꽃을 피우듯이, 시인은 ‘수신’을 목적으로 열심히 시를 쓰면 된다. 다행히 그 꽃과 시가 이 세상을 아름답게 만들면 금상첨화가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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