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조와 하이쿠의 국제교류에 대한 제언
김 재 황
(1)
가깝고도 먼 나라, 일본. 이는, 나에게도 마찬가지이다. 일본을 생각하면 언제나 마음이 편하지 않다. 우리나라를 36년 동안이나 짓밟은 나라이니 어찌 좋은 감정이 있겠는가. 게다가 눈만 뜨면 아직도 그 근성을 버리지 못하고 우리 땅 독도를 탐내고 있으니---. 왜 이웃나라끼리 사이좋게 정담을 나누며 살 수 없단 말인가.
가만히 생각해 보면, 일본 사람 모두가 나쁘다고는 여겨지지 않는다. 그들의 대부분은 예의가 바르다. 나쁜 짓을 저지르는 사람들은, 인기를 얻으려는 정치가나 극우익의 소수 사람들이라고 생각된다. 특히 요즘은 한류의 큰 바람이 일본에서 일고 있으니, 그들과 가까워질 수 있는 가능성은 얼마든지 있다. 다른 분야는 몰라도, 문화적인 분야, 특히 우리 시인들은 마음을 툭 터놓고 마주앉아서 대화를 나눌 수 있을 듯싶다. 아니 그렇게 되어야 한다.
그런데 다행하게 우리나라에는 ‘시조’가 있고 일본에는 ‘하이쿠’가 있다. 우선 이 둘을 매개체로 하여 두 나라의 시인들이 만날 수 있는 계기를 만들 수 있지 않을까?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일본 문학작품에 조예를 지닌 이 사백께 다음과 같은 이메일을 보냈다.
『한 가지 제의합니다. 문학도 세계화를 꾀해야 되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제 혼자 잘났다고 아무리 외쳐 보아야 '우물 안 개구리'가 될 뿐입니다. 그래서 우선 가깝게 위치한 일본과 문학교류를 할 수 없을까 생각해 보았습니다. 다행이 우리에게는 고유한 시가인 '시조'가 있고, 일본에는 '하이쿠'가 있습니다. 그래서 내 생각에, 우리는 우리말로 '하이쿠'를 짓고 일본 사람은 일본말로 '시조'를 지어서 문학지에 발표도 하고 그에 대한 해설을 할 수 있다면 두 나라의 고유 시가가 더 한층 발전하는 계기가 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요즘 우리 시조는 파격이 심하지만, 기본 율격을 초장 3 4 3 4, 중장 3 4 3 4, 종장 3 5 4 3으로 하고 일본 하이쿠는 5 7 5로 하여 시도해 보는 게 좋을 듯싶습니다. 우리나라에서 시조를 짓는 사람 중에 '하이쿠'를 지을 사람은 더러 있는데, '일본 문인이 시조를 지을 수 있느냐'가 문제입니다. 이 일은 이 사백님만이 할 수 있는 일이라고 여겨져서 일단 의논드립니다.』
이 이메일을 보낸 지가 꽤 여러 날이 지났으나 이 사백에게서는 묵묵부답. 아무런 회신이 없었다. 그럴 수밖에. 이 일이 어찌 쉽게 이루어지겠는가. 급한 마음에 이메일을 보냈지만, 참으로 내가 엉뚱하다는 생각이 든다. 이 사백이 나의 이 이메일을 받고 얼마나 황당했을지, 짐작이 가고도 남는다. 이 일은 그리 쉽게 이루어질 일이 아니다. 문득 공자의 말이 생각난다.
‘불환인지불기지 환부지인야’(不患人之不己知 患不知人也 1-16). 이는, ‘남이 나를 알아주지 않는 것을 걱정하지 말고, 내가 남을 알지 못하는 것을 걱정하라’라는 뜻이다.
그렇다. 일본에서 ‘시조’가 우리나라의 민족시라는 것을 알기나 할까. 아니, 우리나라에 ‘민족시’인 ‘시조’가 있다는 사실을 그들은 알까. 내가 알기에, 그들은 우리나라 ‘시조’에 대하여 아무 관심이 없는 듯싶다. 나는 그게 늘 마음에 걸렸다. 아주 못마땅했다. 그래서 그들이 세계적으로 유명하다고 자랑하는 ‘하이쿠’를 외면해 왔다. 축소지향형인 그들의 유희물이라고, 일소에 부쳐 버렸다. 참으로 나의 큰 어리석음이라니, 공자가 이 사실을 알았더라면 크게 꾸지람을 내렸을 게 분명하다. ‘환부지인야!’라고.
우선 일본과 문학교류를 시작하려면, 최소한 어느 정도는 우리가 일본의 ‘하이쿠’에 대하여 알고 있어야 한다. 그런 다음에 그들에게 ‘시조’를 소개하는 절차를 밟아야 한다. 그리고 이러한 일은 다른 나라에게도 계속되어야 한다.
(2)
마음을 일단 열고 보니, 새삼스럽게 알고 싶은 게 많다. 도대체 일본의 ‘하이쿠’는 어떠한 시인지, 우리나라의 시조처럼 정형시라는데, 그 구조가 어떻게 짜이어져 있는지, 그리고 그 시가 어떻게, 어떤 매력을 지녔기에 세계적으로 여러 사람들의 사랑을 받고 있는지, 그 모든 게 자못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하이쿠’에 대해서는 별로 아는 게 없으니 무엇보다 먼저 백과사전을 펼친다. ‘하이쿠’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설명되어 있다.
『홋쿠[癸句]라고도 한다. 3행 17음절로 구성되었으며 각 행은 5·7·5음절로 구성되어 있다. 전통적인 31 음절의 단카[短歌]라는 시의 처음 3행에서 유래했다. 하이쿠는 도쿠가와 시대[德川時代 : 1603~1867]에 단카와 더불어 유행하기 시작했는데 이 시대에 거장 마쓰오 바쇼[松尾芭蕉]가 이 시 형식을 매우 세련되고 의식 있는 예술로 승화시켰다. 바쇼가 쓴 대부분의 하이쿠는 실제로 렌가[連歌]의 홋쿠였다. 하이쿠라는 말은 하이카이[俳諧 : 17음절의 우스꽝스러운 시]의 하이와 ‘홋쿠’라는 단어의 ‘쿠’로부터 유래했다. 하이카이와 홋쿠라는 2개 용어는 수세기 동안 하이쿠의 동의어로 사용되었다. 원래 이 형식은 주제 선정에 있어 비록 암시적이지만 분명한 감정적인 반응을 불러일으키는 4계절 중의 어느 한 계절을 암시하는 자연에 대한 객관적 묘사에만 국한되어 있었다. 후에 주제선정 범위가 넓어졌고 가능한 한 가장 적은 단어수로 더 많은 것을 표현하고 암시하는 예술로 남게 되었다. 그 밖에 하이쿠 거장으로는 18세기의 요사 부손[與謝蕪村]과 18~19세기의 고바야시 잇사[小林一茶], 그리고 19세기 말의 마사오카 시키[正岡子規] 등이 있다.』
여기에서 확 눈길을 끄는 말이 있다. ‘하이쿠’가 3행 17음절로 되어 있다는 말이다. 그에 대해, 우리 ‘시조’는 3행 45음절로 되어 있다고 말할 수 있다. 나로서는 정말로 놀라운 발견이다. 그리고 ‘하이쿠’의 각 행이 5 7 5 음절로 구성되어 있는 반면에, 우리 ‘시조’는 각 행이 15 15 15 음절로 되어 있다. 물론 여기에서 말하는 우리 ‘시조’의 음절은 기본적인 경우를 말한다. 정확히는 ‘내외’(內外)라는 단어가 붙어야 옳다.
하이쿠(俳句)의 특징이라면, 첫째로 5와 7과 5의 운율(韻律)을 지닌다는 사실이다. 다시 말해서 ‘하이쿠’는 정형시이며 5 7 5의 운율을 지니고 있다. 이는 정형시로서 아주 중요한 요소를 이룬다. 이 운율은 개음절(開音節)이라고 하는 일본어 특유의 성질로부터 필연적으로 성립한 리듬이라고 한다. 이는 우리나라 ‘시조’의 경우에서도 마찬가지이다. 둘째로 ‘하이쿠’에는 대부분 ‘계절어’(季語:키고와 季題:키다이)가 들어간다는 사실이다. 이는 어렵게 생각할 필요 없이 ‘계절’을 나타낸다는 뜻이라고 보면 된다. ‘계절어’(季語:키고와 季題:키다이)는 일본인들의 전통적인 계절감에 의해 선택하여 꾸준히 오랫동안 연마해 온 계절의 언어를 의미한다고 말한다. 이렇듯 ‘하이쿠’에서 ‘계절어’는 큰 역할을 하는 성싶다. 이에 대해 마스다(松田)라는 사람은 이렇게 말했다고 전한다.
“하이쿠에 ‘계절어’는 있어도 없어도 괜찮은 것일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계절어’는 있는 편이 좋습니다. 하이쿠에 있어서 ‘계절어’는 큰 역할을 합니다. ‘계절어’는 상징이 되는 이미지를 줍니다. 이것을 연상력이라고 해도 괜찮을 것 같습니다. 또 시간과 공간을 크게 넓히는 역할을 합니다.”
그러나 일본에서는 이에 반기를 드는 쪽도 만만치 않은 듯하다. 즉, 반듯이 계절어(季語)가 들어가야 한다는 ‘계절어 절대파’에서부터, 계절어보다 계감(季感)을 중요하게 여기는 ‘계감파(季感)파’를 비롯하여 무계(無季)라도 좋다고 하는 ‘무계용인(無季容認)파’가 있는가 하면 ‘무계하이쿠(無季俳句)가 구래(旧来)의 하이쿠적 정취를 타파한다고 하는 ’무계(無季)」파‘까지 다양한 생각이 있다고 한다.
그리고 셋째로는, ‘하이쿠’에서 어느 한 곳은 반드시 ‘기레(切れ)’가 있다는 사실이다. 이는 ‘끊어라’ 또는 ‘잘라라’라는 뜻으로 본다. 하이카이(俳諧)는 최초로 읊은 첫 구(発句)를 후에 잇는데, 첫 구(発句)는 둘째 구(句)나 평구(平句)의 동기가 될 필요를 느낀다. 그렇기에 첫 구는 둘째 구에 의존하지 않는 완결성이 요구되었다. 거기서 짜낸 기교가 바로 ‘기레(切れ)’라고 한다. 능숙하게 끊은 첫 구는 ‘끊었지만 있다(切れがある)’라고 평가되어 중시되었다고 한다. 현대의 하이쿠에서 ‘기레(切れ)’는 중요한 테크닉의 하나이며, ‘기레(切れ)’가 없는 구(句)는 ‘하이쿠’로 평가되지 않는다고도 말한다.
여기에 ‘기레지(切れ字)’라는 게 있다. 즉, 강제적으로 구(句)를 끊기 위해 사용되는 글자가 ‘기레지(切れ字)’이다. 일본의 현대 하이쿠에서 사용되고 있는 기레지(切れ字)에는, ‘~일까’(~かな) ‘~여’(~や) ‘~구나’(~けり) 등이 있다고 한다. 이에 대하여, 마쓰오바쇼(松尾芭蕉)는 다음과 같은 말을 했다고 한다. “기레지(切れ字)를 넣는 것은 구(句)를 끊기 위해서이다. 그러나 끊어져 있는 구(句)는 기레지(切れ字)로 자를 필요는 없다. 아직 구(句)가 끊어져 있는지 끊어져 있지 않은지 모르는 초심자를 위해서 미리 기레지(切れ字) 수를 정하고 있다. 정한 기레지(切れ字)를 넣으면 10중 7,8의 구(句)는 자연스럽게 끊어진다. 그러나 간혹 기레지(切れ字)를 다 넣어도 끊어지면 안 되는 구(句)도 있다, 또 들어갈 수 없어도 끊어지는 좋은 구(句)도 있다. 그러한 의미에서 47 문자 모든 것이 기레지(切れ字)가 될 수 있다.”
이 말은, ‘것은 끊는 것’(切れ)은, 구(句) 내용의 문제이지, 기레지(切れ字)가 ‘있고 없고’의 문제는 아니라는 뜻일 것 같다. ‘하이쿠’의 특징을 대강 이야기한다는 게, 너무 깊이 들어온 느낌이 든다. ‘하이쿠’에 대해 더욱 심도 있게 이야기할 수 있는 기회가 반드시 앞으로 생길 것이라 여기기에 이곳에서는 이쯤에서 멈추려고 한다.
그러면 ‘하이쿠’ 한 편을 예로 들어서 그 면모를 살펴보고자 한다. 다음은 그 유명한 마쓰오바쇼(松尾芭蕉)의 작품이다.
‘古池や蛙飛びこむ水のをと’
이를 읽는 소리로 풀면 ‘ふるいけや かわずとびこむ みずのをと’이고 우리 글자 소리로는 ‘후루이케야 가와즈도비코무 미즈노오토’이다. 그 풀이는 ‘오래된 연못 개구리 뛰어드는 물소리 나네.’이다. 이를 3행으로 놓아 보면 다음과 같다.
ふるいけや 5 (오래된 연못)
かわずとびこむ 7 (개구리 뛰어드는)
みずのをと 5 (물소리 나네)
‘하이쿠’로서 정형에 아주 잘 맞는다. 정형시로 이렇듯 정형(韻律)을 제대로 지킨 작품을 만나게 되면 기분이 아주 좋아진다. 그런데 일본의 경우에는, 우리 시조와는 달리, 조금 더 엄격하게 정형을 강조한다는 느낌이 든다. 그들은 5/7/5의 정형을 지키지 못한 경우를 ‘하쵸’(破調)라고 한다. 그리고 ‘하쵸’ 중에서도, 5/7/5(17자) 글자 수보다 부족한 것을 ‘지타라즈’(字足らず)라고 하며, 5/7/5보다 글자 수가 많은 것을 ‘지아마리’(字餘り)라고 한다. 그런가 하면, 아예 5/7/5(17자)의 정형에 구애받지 않는 하이쿠를 ‘자유율 하이쿠’(自由律俳句)라고 하며, 계절어(키고:季語/키다이:季題)가 없는 하이쿠를 ‘무계 하이쿠’(無季俳句)라고 한다. 그런데 이와 같은 ‘자유율 하이쿠’(自由律俳句)와 ‘무계 하이쿠’(無季俳句)는 하이쿠의 다양한 변화 차원에서 시도된다고 알려져 있다.
이 마쓰오 바쇼의 작품은 일본의 ‘하이쿠’를 이야기할 때면 으레 등장하곤 한다. 인기척이 없는, 아주 조용한 연못가에서 개구리 한 마리가 연못 안으로 뛰어들었으니, 정적이 무참히 깨어졌을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 그러나 그것도 한 순간, 곧 깨어진 물은 아물어서 정적은 다시 연못 가득히 채워진다. 그 정적이 더욱 커지는 느낌이다. 개구리와 관련하여 그때까지 와카(和歌)나 렌가(連歌)에서 흔히 등장했던 것은 울음소리였다고 한다. 그런데, 연못 안으로 뛰어드는 소리라니, 이로 인해 이 작품은 참신함을 인정받았다고 전해진다. ‘오랜 연못’은 ‘한적한 옛날이야기’를 안고 있건만, 거기에 정적을 깨는 새로움이 더하여짐으로써 미묘한 느낌을 깊어지게 만든다는 평을 받고 있다.
여기 이 마쓰오 바쇼의 작품에서 다시 ‘하이쿠’의 다른 특징을 짚어 보고자 한다. 여기에서의 ‘계절어’는 무엇일까? 그야 당연히 ‘개구리’이다. ‘개구리’는 여름을 대표한다. 그리고 이 작품에서의 ‘기레(切れ)’는 어디에 있을까? 작품을 보면, ‘古池や’(오래된 연못이여)에서 그 다음 구(句)에 흐름이 끊어져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는, 독자로 하여금 일순간 끊어진 사이에서 작자를 둘러싸고 있는 환경이나 작자의 ‘사상’ ‘감정’ ‘정념’ ‘배경’ 등을 마음껏 상상하도록 만드는 장치라고 한다. 이게 바로 ‘기레(切れ)’인 듯싶다. 이로 말미암아, 17문자라고 하는 한정된 어수(語數)로 말의 형태와 질감을 주는 효과를 낼 수 있다고 한다. 게다가 계절어와 함께 구(句)에 긴 여운을 지닐 수 있도록 만든다고 한다.
그렇다면 마쓰오 바쇼의 이 작품 이미지를 우리나라 시조로 바꾸어 노래한다면 어떠한 모습이 될까? 내 나름대로 시상을 떠올려서 단시조 한 편을 다음과 같이 지어 보았다.
바람은 잠이 들고 둥근 달만 떠가는 밤 3 4 4 4
세워 든 부들 꽃에 찬 이슬이 내리는데 3 4 4 4
철버덩 개구리 한 마리 깊은 정적 깨운다. 3 6 4 3
이 작품은 초장 15자이고 중장 15자이며 종장 16자로 모두 46자로 되어 있다. 종장에 한 자가 더 길어졌지만 그리 큰 문제는 되지 않는다. 여기에서 때는 ‘밤’이고 계절은 ‘여름’이다. 부들이 7월경에 꽃을 피우기 때문이다. 초장을 ‘밤’으로 하여 잠시 쉰 까닭은, 이 작품의 흥을 돋우기 위한 장치라고 여기면 된다. 그리고 중장에 ‘부들’을 등장시킴으로써 그 장소가 물가라는 사실을 알린다. 그런데 하늘에 ‘둥근 달’이 떠가고 있으니, 아래의 물도 ‘둥근 호수’로 연상하면 된다. 하늘은 둥글고 땅은 네모지다. 그러므로 ‘둥근 연못’은 ‘하늘’을 나타낸다. 아니, 여기에 ‘우주’가 열려 있다. 그리고 종장에서 ‘개구리가 펄쩍 물속으로 뛰는 것’은 ‘살아 있는 목숨’을 가리킨다. 이 종장의 ‘시구’에서 역동성을 느끼고 여기에서 ‘엘랑비탈’(elan vital)을 발견한다. ‘엘랑비탈’은, 이러한 ‘동적 과정의 내적 충동력’을 가리킨다. 즉, ‘우주의 창조적 진화’를 상징한다고 보아도 좋다. 이게 이른바 ‘생명의 본 모습’일 터이다.
이왕 내딛은 걸음이니, 마쓰오 바쇼가 어떤 사람인지, 잠시 엿보기로 한다. 그는 1644년에 지금의 우에노 부근에서 가난한 하급 무사의 아들로 태어났다고 한다. 어릴 적 이름은 ‘긴사쿠’였고 본명은 ‘무네후사’였다고 한다. 그가 섬기던 주군이 ‘하이카이’(俳諧)를 좋아하였기 때문에 그도 문학의 세계에 눈을 뜨게 되었는데, 23세가 되어서야 이름을 ‘도세이’로 바꾸고 교토로 나가서 ‘기타무라 기긴’에게 본격적인 지도를 받았다고 한다. 그 이후, 35세에 ‘하이쿠’의 스승으로 독립하였으나, 지나친 말장난과 경박한 해학에 한계를 느끼고 37세 때에 암자에 은거하며 중국 시인들인 ‘두보’ ‘백거이’ ‘소동파’ 등의 시풍에 심취했다고 한다. 그 무렵에 그의 제자 한 사람이 그 암자에 ‘파초’(芭蕉, Musa basjoo)를 심었고, 그대부터 그를 ‘파초’, 즉 ‘바쇼’라고 부르게 되었다고 전한다. 그 후, 4년여의 암자 생활을 청산하고 오랜 방랑을 시작하였으며, 긴 여행을 통하여 수많은 일화를 남겼다고 한다. 그는 마침내 개성적인 색채로 ‘하이쿠’에 높은 문학성을 부여하였는데, 1694년에 나가사키로 가던 도중에 오사카에서 객사하였다고 알려져 있다. 50살의 나이로 이 세상을 떠났으니 짧은 생애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하이쿠’에 관한 한, 그는 큰 족적을 남겼다. 그가 남긴 ‘하이쿠’ 몇 편을 본다.
秋ふかし(あきふかし)
隣は なにを(となりは なにを)
する 人ぞ(する ひとぞ) *가을은 깊어가고 옆(집) 사람들은 무얼 하고 있단 말인가
此の 道や(このみちや)
行人なしに(ゆくひとなしに)
秋の 暮れ(あきのくれ) *이 길엔 행인도 없이 가을만 깊어가네.
静かさや(しずかさや)
岩に しみ入る(いわに しみいる)
蝉の こえ(せみの こえ) *정적 속에서 바위에 스며드는 매미의 울음
(3)
어떤 사람은 이런 말을 했다. “일본의 ‘하이쿠’를 한 순간의 사진이라고 할 때, 우리 시조는
짧은 한 편의 동영상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럴 듯한 말이다. 정말이지, ‘하이쿠’는 짧기 때문에 멈춘 이미지를 나타낼 수밖에 없을 성싶다. 이미지 시들은 자유형식의 운율을 따른다. 코멘트나 설명체가 아니라 시각적으로 드러나는 사물에 대한 작가의 반응을 나타내지 않는다. 은유를 가져다가 표현하면서 하나의 사물을 다른 사물 또는 다양한 객체들에 중첩시켜 묘사하는 방법을 택하여 이미지를 표현한다. ‘하이쿠’에서 이미지즘의 가장 기본형은, 두 가지 이상 이미지의 대조로서 제3의 이미지를 재생시키는 그 어휘적 선택에서 가장 중요한 흐름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 어찌 보면 선시 같기도 한데, 이런 시가 어찌 세계화를 이룩할 수 있었을까. 부럽다!
1910년을 앞뒤로 하여 이미지를 중시한 짧은 ‘무운시운동’(無韻詩運動)이 일어났을 때, 일본 문화가 구미(歐美)에 알려지게 되었다고 한다. 서양에서는 동양예술에 대한 동경과 함께 일본의 ‘하이쿠’를 선명한 이미지의 시로서 받아들이게 되었을 것 같다.
아무튼 ‘하이쿠’는 국제화에 성공한 대표적 시가(詩歌) 문학임에는 틀림없다. 1999년이 ‘하이쿠’ 탄생 500주년이고, 국제화에도 벌써 100년의 역사가 있다. 세계적으로 지금은 약 50개국의 나라에서 200만 명이 넘는 사람들이 각기 자기 나라의 언어로 ‘하이쿠’를 즐긴다고 한다.
이렇듯 세계화를 이룰 수 있었던 바탕에는, 일본 국내의 탄탄한 ‘하이쿠 사랑’의 기반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여겨진다. 오늘 날, 일본 국내에는 ‘하이쿠 결사체’가 약 900여 개에, 매달 발행되는 ‘하이쿠 잡지’는 700여 종이고, ‘하이쿠’를 직접 지으며 즐기는 인구가 100만 명이나 된다고 한다. 특히 긍정적인 것은, ‘하이쿠’는 많이 작품을 짓는 가운데 좋은 작품이 생기는 메커니즘을 지니고 있다는 사실이다. 유명한 ‘하이쿠 작가’들의 알려진 작품도, 그가 쓴 수만 점 가운데에서 가려낸 ‘빼어난 작품’이라니, 그 노력이 어떠한지는 짐작하고도 남는다. 그렇다. 생활화가 필요하다. 문득 ‘중용’에 들어 있는 ‘인일능지 기백지’(人一能之 己百之)라는 말이 떠오른다. 즉, ‘남이 한 번에 잘하면 나는 백 번을 하라.’라는 뜻이다.
국제화에 성공한 ‘하이쿠’를 두고 마냥 부러워하기만 해서야 무엇이 되겠는가. 우선 우리 ‘시조’도 국내에 튼튼한 뿌리를 내는 게 시급하고, 그와 동시에 ‘하이쿠’와 동반자적 위치를 확보하는 것 또한 미룰 수 없는 일이다. 그렇게 되려면, 나를 알고 남을 알아야 한다. 그래서 서툴기 이를 데 없지만, 나도 ‘하이쿠’ 한 수를 지어 보았다.
良い畑,(よいはたけ,) 5
農夫なら誰も(の-ふならだれも) 7
種を撒く(たねをまく) 5
*좋은 밭(에는), 농부라면 누구나 씨를 뿌린다.
이 세상의 모든 여자를 ‘밭’이라고 할 때, 이 세상의 모든 남자는 ‘농부’가 아닐 수 없다. 그렇기에 남자들은 ‘좋은 여자’를 만나면 자신의 씨를 뿌리고 싶어 한다. 이는 가장 원초적인 본능이고, 이것 때문에 인류가 번창할 수 있었다. 씨는 일반적으로 ‘봄’에 뿌리니, 이를 ‘계절어’라고 할 수 있겠다. 또, ‘좋은 밭(에는)’에서 ‘쉼표’로 끊었으니 이를 ‘기레(切れ)’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운율에서 7의 부분이 정확히는 '-'까지 8(농부:のうふ)이니, ‘지아마리’(字余り)라고 해야 옳지 않을까? 이렇듯 좀 억지이긴 해도, ‘하이쿠’에 내가 아주 초보적인 사람임을 감안한다면 그저 웃고 넘길 수도 있을 것 같다. 아무래도 남에게 다가가기 위해서는 남을 깊게 이해하는 방법밖에 없을 터이다. 그 이후에 우리 ‘시조’도 자연스레 그들에게 전할 수 있을 듯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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