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11월 11일 인덕원 근처에서 촬영
시를 쉽게 지어야 하는 까닭
김 재 황
모름지기 시(詩)는 쉽게 써야 한다. 옛 시인들은, 자기 시의 초고를 촌부에게 보여주고 나서 그 뜻을 알겠다고 한 뒤에야 세상에 발표하였다고도 한다. 시도 소통을 전제로 한다. 그러니 알기 쉬운 언어로 지어야 한다.
그런데 왜 시를 어렵게 짓는가? 이른바 ‘난해시’(難解詩)는 누가 무어라고 하든지 ‘권위적’인 발상에서 비롯되었다고 본다. 법률용어나 의학용어가 어려웠던 바와 마찬가지이다. 말하자면 ‘벌거벗은 임금님’의 우화를 생각하게 한다. 사실은 그게 아님을 알면서도 혹시 무식하다는 말을 들을까 하여 동조하게 된다. 시인에게 독자는 참으로 고마운 손님이다. 그런데 시를 왜 어렵게 지어서 그 고마운 독자를 시(詩) 안에서 헤매게 만드는가. 내용뿐만 아니라, 형식에서도 연과 행을 잘 나누어서 독자가 쉽게 읽을 수 있도록 배려하는 게 시인의 어진 마음이다. 그렇지 아니한가!
중국 고전인 ‘논어’(論語)에는 다음과 같은 구절이 있다. ‘자 불어괴력난신’(子 不語怪力亂神)<술이20>. 이는, ‘공자께서 믿어지지 않는 것이나 힘으로 하는 것이나 어지러운 것이나 이상야릇한 것 등을 말씀하지 않으셨다.’라는 뜻이다. 이 중에서 어지럽거나 이상야릇한 것이 ‘어려운 시’에 해당할 것 같다. 그런가 하면 공자님의 손자인 ‘자사’가 기술하였다고 알려진 ‘중용’(中庸)에는 공자님의 다음과 같은 말씀이 들어 있다. ‘색은행괴 후세유술언 오불위지의’(索隱行怪 後世有述焉 吾弗爲之矣)<제11장> 이는, ‘숨어 있는 것을 들쑤셔 내고 이상야릇하게 굴면 죽은 다음에 이야깃거리가 될 만큼 알려질 수도 있겠지만 나는 그리하지 않는다.’라는 뜻이다. 이를 보면, 그 옛적에도 난해하게 구는 사람이 있었던 모양이다.
시의 생명은 순수함에 있다. 모두 알고 있듯이, 시의 원류라면 ‘시경’(詩經)을 말하지 않을 수 없다. 논어에는 공자의 다음과 같은 말씀도 들어 있다. ‘시삼백 일언이폐지 왈사무사’(詩三百 一言以蔽之 曰思無邪). 이는, ‘(시경의) 시 삼백 편은 한 마디로 말해서 나타낸 생각에 바르지 아니함이 없다.’라는 뜻이다. 여기에서 ‘사’(邪)는 ‘고을에 간사한 무리들이 날뛰는 것’을 나타내는 글자이다. 난해시 안에는 ‘검은 음모’가 들어 있다. 순수하지 않다. 그러므로 ‘간사한 무리’나 좋아할 일이 분명하다.
화려한 꽃뿐만이 아니라 작고 볼품없는 꽃도 위대하다. 그러므로 잘 알려진 시(詩)뿐만 아니라 잘 알려지지 않은 시(詩)도 존중되어야 마땅하다. 그러나 여기에 전제조건이 있다. 반드시 꽃이라면 진짜여야 하고 시라면 순수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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