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지적 재산에 대하여

시조시인 2015. 12. 11. 18:27

시인의 지적 재산에 대하여

 

김 재 황

 

 

가깝게 지내는 사람과 만나서 차 한 잔을 나누게 되었는데, 그는 그 자리에서 나에게 목에 힘을 주고 자랑스럽게 말했다. “내 재산이 한 30억 원쯤은 될 것 같습니다.” 그 말을 듣고, 나는 가볍게 대답했다. “내 재산도 그 정도는 됩니다.” 그는 깜짝 놀라며 언제 그렇게 큰돈을 벌었느냐?’라는 의문의 표정을 지었다. 나는 말했다. “그 동안 내가 저술한 책이 대략 30여 권은 되니, 그 한 권당 값어치를 1억씩만 쳐도 그 정도는 되겠지요.” 내 말을 듣고, 그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거렸다. 이 세상에 어디 물적 재산’(物的 財産)만 있겠는가. ‘지적 재산’(知的 財産)도 엄연히 존재한다.

새벽에 밖으로 나가면 벌써 많은 사람들이 붐빈다. 돈을 벌려고 일터로 가는 사람들이다. 이들은 모두 ’()를 얻으려고 땀을 흘린다. 이렇듯 로써 얻는 게 물적 재산이다. 그런가 하면, 책상에서 온 밤을 하얗게 밝히는 사람들도 있다. 특히 시인은 ’() 한 편을 쓰려고 그 영혼을 불사른다. 이들은 모두 ’()를 얻으려고 진땀을 뺀다. 이렇듯 로써 얻는 게 지적 재산이다. 여기에서 문득, 중국 고전 맹자’(孟子)의 한 글귀가 떠오른다.

맹자가 양나라(위나라) 혜왕을 만났는데 왕이 말했다. “늙으신 분이 천리 길을 멀다고 아니하시고 오셨으니 역시 장차 내 나라에 이롭게 함이 있겠습니까?” 맹자가 대답하였다. “왕께서는 하필 이로움을 말씀하십니까? 오직 ’()’()가 있을 뿐입니다.”(孟子 見梁惠王 王曰 叟 不遠千里而來 亦將有以利吾國乎. 孟子 對曰 王 何必曰利 亦有仁義而已矣.)<맹자 양혜왕 장구 상1 중에서>

그렇다. 물적 재산과 지적 재산은 큰 차이가 있다. 물적 재산은 사유’(私有)가 원칙이지만 지적 재산은 공유’(共有)가 원칙이다. 좀 쉽게 말해서, ‘사유라고 하면 그것을 가지고 아무나 즐길 수가 없다. 그러나 공유라고 하면 아무나 그것을 가지고 즐길 수가 있다. 사적 재산은 혼자 독차지하는 반면, 지적 재산은 처음부터 여러 사람이 함께하기를 바란다. 그렇기에 노자는 불귀난득지화 사민불위도’(不貴難得之貨 使民不爲盜, 얻기 어려운 돈을 귀하게 여기지 않으면 나라사람이 도둑질을 하지 않게 된다.)(3장 중>라는 글을 남겼다. 귀하게 여기기에 독차지하려고 싸운다. 모두가 나누기는 싫어하고 가져가려고만 하니 그렇게 될 수밖에 없다.

시인은 즐겁게 시()로써 베푼다. 아니, 베풀려고 시를 쓴다. 고전인 논어(論語)에서 공자는, ‘기 불칭기력 칭기덕야.’(驥 不稱其力 稱其德也, 천리마는 그 힘을 기리는 게 아니라, 그 베풂을 기리는 거다.)<헌문35>라고 했다. 이는, 아무리 재산을 많이 가지고 있다고 하더라도, 그 재산으로 베풀지 않으면 아무 소용이 없다는 뜻이다.

, 고전인 대학’(大學)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이 있다.

덕자본야 재자말야. 외본내말 쟁민시탈. 시고 재취즉민산 재산즉민취(德者本也 財者末也. 外本內末 爭民施奪. 是故 財聚則民散 財散則民聚, 베풂이라는 것이 뿌리이고 재산이라는 것은 가지나 잎이다. 뿌리를 밖으로 버리고 가지나 잎을 안으로 껴안으면 나라사람이 다투게 되고 빼앗고 훔침을 퍼뜨리게 된다. 그런 까닭에 재산이 모여들면 나라사람은 흩어지고 재산이 흩어지면 나라사람은 모여든다.)

그러하니 이 물적 재산을 지키기가 얼마나 힘들겠는가. 많으면 많을수록 여러 사람이 눈독을 들일 터이니, 담장을 높이 치고 감시 카메라까지 설치한다. 그렇다고 안심이 되겠는가. 무거운 근심이 늘 가슴을 짓누르게 된다. 그러나 시인의 지적 재산은 아무리 많이 지니고 있어도 아무런 근심이 없다. 이미 모두 내주었으니 그저 기쁨만 있을 뿐이다.

물론, 나라에서는 사후 얼마 동안까지 지적 재산도 법률로써 보호해 주고 있다. 이는, 무단전재(無斷轉載)로 이()를 얻으려는 사람들을 막기 위한 것이지, 순수한 독자들은 해당되지 않는다고 본다. 나는 언제라도 얼마든지 내 지적 재산을 제공할 용의가 있다.

시는 한 마디로 대영약충 기용불궁’(大盈若沖 其用不窮, 크게 차서 빈 것 같은데 그 씀은 멈춤이 없다.)<노자 제45장 중>이다. 그리고 기이위인기유유 기이여인기유다’(旣以爲人己愈有 旣以與人己愈多, 이미 남을 도움으로써 제 스스로에게 더욱 있게 되고 이미 남에게 줌으로써 제 스스로에게 더욱 많게 된다.)<노자 제81장 중>이다. 이 얼마나 행복한 일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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