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의 눈이 뜨이시어
김 재 황
앞을 못 보시는 할머니
마음의 눈이 뜨이시어 세상이 환하다,
맑은 햇빛 날아드는 소리 들으시려고
날마다 창을 닦으시고
밝은 얼굴로 오는 바람을 맞으시려고
마루를 열심히 훔치신다,
밖을 보면, 비탈진 텃밭에 정성껏
더듬어서 심어 놓으신 고추 몇 포기
매운 세상살이처럼
벌겋게 익은 열매들을 힘껏 달고 있다,
마을로 곧장 흐르는 길
다시 거슬러 올라가서 머무는 마당 어귀
이웃에게 예쁘게 보이라고
수줍은 맨드라미 고운 머리 빗기신다,
불 안 켜신 채로 한 땀 한 땀
꿰매어 오신 삯바느질
그 팔십 평생이 내 어두운 마음 밭에
환하게 모란 꽃송이로 피어난다.
(2006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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