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조 2편)
연꽃 심서
김 재 황
이슬이 맺힌 잎은 바탕으로 열어 두고
널따란 물거울에 그 얼굴을 비춰 보면
하늘로 향한 마음은 홍조 일어 흐논다.
눈감고 손을 모아 달무리를 두른 가슴
비릿한 물바람에 제 그림자 더욱 젖어
진창을 디디고 서서 턱을 괴는 꽃대여.
쏟아진 소나기가 둥근 다리 건넌 다음
무더운 한나절을 헹궈 내는 서산 위로
그 연밥 붉은 탄성이 별자리로 여문다.
연꽃 소묘
김 재 황
제법 굵은 소나기가 후드득 쏟아진 다음
실없는 실잠자리 맴을 돌다 떠난 자리
그녀는 목을 늘이며 긴 하품을 입에 문다.
넌지시 까만 눈이 물거울을 굽어보면
꼭 닮은 또 한 얼굴 마주보며 미소 띤다
행여나 누가 볼세라 붉어지는 그 뺨들.
소매로 가릴수록 더욱 비린 그녀 살내
철없는 물바람이 곁을 스치기만 해도
‘어머나!’ 소스라치며 그만 몸을 움츠린다.
(시작 노트)
연꽃에 대하여
김 재 황
거울같이 맑은 물 위에서 연붉은 빛깔을 머금고 피어나는 연꽃은 아름답다 못해 경건함마저 느끼게 한다. 연꽃은 일명 ‘만다라화’(曼茶羅花)라고 부른다. 불교를 믿는 사람들이거나 그들의 사회에서는 무척이나 존중하는 꽃이다. ‘뇌지’(雷芝) 또는 ‘연하’(蓮荷)라는 호칭도 지니고 있으며, 장수와 건강과 명예와 행운 및 군자 등을 상징한다. 꽃말은 ‘순결’이고, 인도와 이집트가 원산지로 알려져 있다.
물론, 연꽃은 붉은 빛깔의 꽃만 있는 게 아니라, 흰 빛깔의 꽃도 있다. 하지만 연꽃이라고 하면 연붉은 빛깔의 꽃송이가 먼저 눈앞에 떠오른다. 그 빛깔과 그 모습이 더없이 아름답기에 뭇사람들에게 사랑을 받는다. 게다가 어쩐지 크나큰 슬픔을 머금고 있는 듯해서 연민의 정을 더한다.
옛날, 먼 아라비아 나라에 ‘마음 착한 소녀’가 살고 있었다. 그 당시에 아라비아는 물이 귀했으며, 샘물마다 주인이 있어서 물을 팔고 샀는데, 그 소녀는 푸른 물이 솟아나는 샘물을 가지고 있었다. 소녀의 샘물은 참으로 맑고 시원했다. 그래서 사막을 건너 온 사람들은 누구든지 그 샘물을 원했기에 많은 돈을 벌었다. 그러나 가난한 사람에게는 돈을 받지 않고 나누어 주곤 했다.
어느 날이었다. 허름한 옷차림의 한 젊은이가 와서 물 한 모금을 청했다. 그 행색으로 보아서 물 값을 받기는 어려울 것 같았지만, ‘마음 착한 소녀’는 친절히 물 한 그릇을 떠서 그에게 건네었다. 젊은이는 그 물을 시원하게 마셨다. 그리고는 보답의 뜻이라며 몸에 지니고 있던 향수를 물그릇에 부어 주었다.
그리고 열흘이나 지났을까? 왕자가 ‘마음 착한 소녀’에게 구혼하기 위하여 샘터로 온다는 소식이 들리기 시작했다. 그 소문을, 그 곳 샘터를 관장하는 성주도 듣게 되었다. 성주는 아주 욕심이 많았으므로, 자기의 딸을 푸른 샘물 앞에 앉혀 놓고는, ‘마음 착한 소녀’를 먼 곳으로 쫓아 버리고 말았다.
마침내 왕자 일행이 푸른 물이 솟는 샘터에 도착했다. 성주의 딸은 얌전히 물을 떠서 왕자에게 주었다. 왕자는 물그릇을 받아 들고 자세히 냄새를 맡아 본 뒤에 말했다.
“이 물그릇이 아니야, 향기가 없단 말이야.”
왕자는 크게 실망하고는, 궁궐로 돌아가 버렸다. 낭패를 본 성주는, 독한 마음을 품었다. 그는 부하들을 이끌고 ‘마음 착한 소녀’를 찾아간 후에 ‘향내가 나는 물그릇’을 빼앗았다. 그리고는 끝내 ‘마음 착한 소녀’를 연못 속에 밀어 넣고 말았다. 그 슬픈 소식은 온 나라에 퍼지게 되었고, 드디어 왕자의 귀에까지 전달되었다. 왕자가 말을 달려서 그 연못으로 찾아갔을 때는, 다만 ‘마음 착한 소녀’의 모습으로 한 송이 연꽃이 피어나 있을 뿐이었다.
꽃은 7월에서 8월에 걸쳐서 핀다. 가시 돋은 꽃줄기 끝에 한 송이씩 달리고 꽃받침은 녹색인데 일찍 떨어진다. 꽃잎은 거꾸로 된 달걀꼴이다. 한낮에 오므리는 모습이 수줍음을 나타낸다.
연꽃은 여러해살이 물풀이다. 뿌리줄기는 흰 빛을 띠고 굵으며 마디가 있다. 원기둥꼴이며 가로 뻗는데, 가을철에는 특히 끝부분이 굵어진다. 연꽃은 꽃도 꽃이려니와, 그 잎이 참으로 아름답다. 그 모습과 그 마음이 모두 전설 속의 아름다운 아라비아 그 소녀를 떠올리게 된다. 연잎은 뿌리줄기에서 돋아 나온다. 물 위에 가볍게 뜨는데, 물에 잘 젖지 않고, 둥그런 방패 모양에 사방으로 퍼진 잎맥을 내보인다. 그러므로 누구나 만나면 정감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그렇지만 잎자루에도 짧은 가시가 있어서 엄한 기운이 감돈다.
땅속줄기는 예전부터 식용으로 사용해 왔다. 즉, 저냐와 죽 및 정과 따위를 만들어서 먹었다. 또한 어린잎을 데쳐서 쌈으로 먹기도 했다. 사실, 연꽃은 이용가치가 매우 높은 식물이다. 버릴 게 하나도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 모든 부분이 약재로 사용되기 때문이다.
연잎은 복통을 멎게 하고, 산모를 안태(安胎)하게 하며 ‘나쁜 피’를 없애 준다고 한다. 특히 연잎으로 만든 연죽은, 정력을 증진시키는 데에 아주 놀라운 효력이 있다고 전한다.
중국 청나라 말기에 홍수전(洪秀全)이라는 사람이 이 연죽을 상용하였는데, 수백이나 되는 여인들을 거느리고 살았다고 한다. 그 밖에도 중국 역대의 풍류 황제들 중에는 이 연죽을 먹고 쇠약해진 정력을 되찾은 이들이 많다고도 한다.
연뿌리는 단백질과 전분 등이 많이 함유되어 있어서 요리로서 활용가치가 클뿐더러 차를 만들어서 마시기도 한다. 이 차는 여자들의 대하증 치료의 효과가 높다. 그뿐만 아니라 미용에도 도움이 크기 때문에 얼굴과 살결의 색깔이 좋아지고 여드름과 주근깨 등을 없애는 효능을 지녔다고 전한다.
꽃은 망울과 수술까지 약재로 쓰는데, 심장을 진정시키고 몸을 경쾌하게 하며 안색을 곱게 한다고 한다. 그리고 연꽃의 종자인 ‘연밥’은, 기력을 길러 주고 백 가지 병을 없애 주는 특효가 있다고 한다. 즉, 오장을 보하고 갈증을 없애며 이질을 다스린다. 또한 심신을 편하게 하고, 많이 먹으면 기분이 상쾌해진다. 그러나 날것으로 먹으면 헛배가 부르게 되므로 반드시 쪄서 먹어야 한다고, 여러 문헌에 기록되어 있다.
한방에서는 연밥의 딱딱한 겉껍질을 벗겨 버리고 나서 달여서 마시도록 한다. 신체허약이나 설사병 및 몽정에 좋고 자양강장제나 보음양혈제로 많이 쓰이고 있다. 연밥은 아주 수명이 길어서 1천 년 이상이나 지났어도 싹이 튼다고 하며, 그 발아율도 높아서 거의 100%에 가깝단다. 그 이유는, 껍질이 단단하고 함수량이 적어서 낮은 호흡을 할 수 있으며 단백질의 내구력이 높기 때문이라고 한다. 연밥은 일명 ‘연실’(蓮實) 혹은 ‘연자’(蓮子)라고도 부른다.
연즙(蓮汁)은 각혈이나 토혈을 멎게 하고, 밀과 함께 섞어서 먹으면 살이 찐다고 하며, 기생충 예방의 효력도 지녔다고 전한다. 그리고 연의 성분은 주로 넬룸빈(nelumbine)과 비타민C 및 단백질 ․ 전분 ․ 지방 ․ 회분 등이라고 알려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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