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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로 돌아온 나폴레옹은, 영국을 쓰러뜨리기 위한 계획을 세웠습니다. 왜냐고요? 입술을 잘 보전하지 않으면 이가 시리기 때문입니다. 앞에서 말한, ‘입술은 프랑스이고, 이는 코르시카’라는 말을 잊지는 않았겠지요?
나폴레옹은 늘 단단무타하였습니다. ‘단단무타’(斷斷無他)는 ‘오로지 한 가지 신념 외에 딴마음이 없음’을 나타냅니다. 그 신념은, 코르시카가 지닌 농조연운의 꿈을 이루는 겁니다. ‘농조연운’(籠鳥戀雲)은 ‘갇힌 새가 구름을 그린다.’는 뜻으로 ‘자유를 그리는 마음’을 비유해서 이르는 말입니다. 다시 말해서 모든 코르시카 사람들의 꿈이 이루어지게 하고, 코르시카를 금구무결의 땅이 되도록 만드는 겁니다. ‘금구무결’(金甌無缺)은 ‘금으로 만든 단지가 흠집이 없는 것처럼 완전하여 결점이 없음’을 뜻하고, ‘나라가 한 번도 외적에게 침범당한 일이 없음’을 비유하여 나타낸 말이지요.
그렇습니다. 나폴레옹은 자소이래로 코르시카를 잊은 적이 한 번도 없었습니다. ‘자소이래(自少以來)로’는 ‘어렸을 때부터 이제까지’를 가리키는 부사입니다. 이와 비슷한 말로 ‘자고이래(自古以來)로’가 있습니다. 이는, ‘예로부터 내려오면서’를 나타냅니다.
물론, 전쟁을 함부로 해서는 안 됩니다. 될 수 있는 한, 전쟁은 하지 않는 게 좋습니다. 그러나 전쟁을 부득이 해야만 한다면 반드시 이겨야만 합니다. ‘부득이’(不得已)는 ‘하는 수 없이’ 또는 ‘마지못하여’라는 뜻입니다. 이를 한문으로는 ‘불가부득’(不可不得)이라고 씁니다. 비슷한 말로는 ‘불가피(不可避)하다.’가 있는데, 이는 ‘피할 수가 없다.’를 이릅니다.
늘 영국은 프랑스를 괴롭혀 왔습니다. 그러나 프랑스에게는 영국이 가장 벅찬 상대였습니다. 이를 그대로 두었다가는 프랑스가 언제 백척간두에 놓이게 될는지 모르는 일이었습니다. ‘백척간두’(百尺竿頭)는 ‘백 자나 되는 높은 장대 끝’이라는 뜻으로 ‘매우 위태롭고 어려운 지경’을 이르는 말입니다.
이 무렵이었지요. 영국은 아시아라든가 인도에서 물품을 배로 들여오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통로에 이집트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프랑스가 이집트를 정복하면, 영국이 힘을 못 쓰게 됩니다.
즉, 나폴레옹은 타초경사를 생각해 낸 겁니다. ‘타초경사’(打草驚蛇)는 ‘풀을 쳐서 뱀을 놀라게 한다.’는 뜻으로 ‘을(乙)을 징계하여 갑(甲)을 경계함’을 말합니다. ‘징계’(徵戒)는 ‘허물을 뉘우치도록 주의를 주고 나무람’ 또는 ‘부정이나 부당한 행위를 되풀이하지 못하도록 따끔한 맛을 보여줌’을 말합니다. 그리고 ‘경계’(驚戒)는 ‘잘못을 저지르지 않도록 미리 타일러서 조심하게 함’을 이릅니다. ‘타초경사’라는 말은 ‘개원유사’(開元遺事)라는 책에 실려 있습니다.
“좋아, 이집트로 가자!”
나폴레옹은 프랑스의 미래에 닥칠 국보간난을 막기 위하여 위험하기 이를 데 없는 땅으로 들어가야 하겠다고 굳은 결심을 하게 되었습니다. ‘국보간난’(國步艱難)은 ‘나라의 운명이 매우 어지럽고 어려움’을 가리킵니다.
여기에서 잠깐 이집트에 대하여 알아보고 넘어가야 하겠습니다. 여러분도 다 알다시피, 이집트(Egypt)는 나일 강의 하류 유역의 아주 오래된 인류문명발상지 중의 하나입니다. 기원전 3천 년에 시작되는 이집트는, 제1왕조에서 제6왕조까지를 고왕국(古王國) 또는 피라미드 시대라고 일컫습니다.
그리고 기원전 2052년부터의 제11왕조와 제12왕조를 중왕국(中王國)이라고 부릅니다. 그 당시의 수도는 테베(Thebes)였고, 최고의 신은 ‘아몬’(Amon)이었습니다.
그 후, 기원전 1567년부터의 제18왕조에서 제20왕조까지를 신왕국(新王國) 시대라고 하는데, 투트메스(Thutmes) 3세는 이웃나라를 병합하여 세계제국을 건설하고 당시의 문명세계에 군림하기도 했습니다. 여기에서의 ‘군림’(君臨)이란, ‘어떤 지역에서 절대적인 힘을 가지고 남을 누르는 일’을 말합니다. 그러나 기원전 1085년의 후제국 시대 이래로 국력이 쇠퇴하기 시작하여, 기원전 7세기에는 아시리아(Assyria)에 정복되었고, 이어서 페르시아와 마케도니아의 지배를 거친 다음에 기원전 30년에는 로마 영이 되었다가 7세기에는 아랍의 침입으로 이슬람의 영향 밑에 들게 되며, 다시 16세기에 터키영이 되고, 19세기에서야 독립하였습니다.
이 동안, 1798년에 나폴레옹의 원정이 있었으며, 1869년에 수에즈 운하가 개통된 후에 영국과 프랑스의 공동관리를 받았습니다. 그리고 19세기 말부터 영국의 단독지배 아래에 있었으나, 민족운동이 일어남으로써 1922년에 이집트 왕국으로 이름뿐인 독립을 했으며, 비로소 1958년에 가서야 통일아랍공화국이 성립되었지요. (김재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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