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자, 그리고 나무 찾기

제35장, 큰 생김새를 잡고 하늘 아래로 간다(역: 녹시 김 재 황)

시조시인 2022. 2. 23. 18:33

길- 제35장

큰 생김새를 잡고 하늘 아래로 간다 





 큰 생김새를 잡고 하늘 아래로 간다. 가도 ‘깎이게 되지’ 않으며, ‘거북하거나 괴롭지 아니하고 아무 일이 없으며 걱정도 없어서’ 크다. 
 멋진 음악과 맛 좋은 음식은 지나가는 나그네도 걸음을 멈추게 하나, 길의 입에서 나오는 것은 싱거워서 그 맛이 없다.
 보아도 넉넉하게 그걸 보지 못하고 들어도 넉넉하게 그걸 듣지 못한다. 써도 그게 넉넉하게 다 됨이 없다.


執大象 天下往. 往而不害 安平太. 樂與餌 過客止 道之出口 淡乎其無味. 視之不足見 聽之不足聞. 用之不足旣
(집대상 천하왕. 왕이불해 안평태. 악여이 과객지 도지출구 담호기무미. 시지부족견 청지부족문. 용지부족기) 


[뜻 찾기]
 ‘집대상’(執大象)에서 ‘대상’은 ‘대도’(大道), 즉 ‘커다란 길’을 가리킨다고 한다. 왕필(王弼)은, ‘대상은 천상(天象)의 어머니로서 차지도 따뜻하지도 서늘하지도 않은 까닭에 능히 만물을 포섭하고 통괄하여 범상(犯傷)하는 일이 없다.’라고 하였다. 즉, ‘대상’은 ‘자연에 존재하는 모든 형상의 모체인, 너무 커서 보이지 않는 길(道)의 형상’이라고 한다. 그러나 나는 ‘상’을 글자 그대로 풀어서 ‘생김새’라고 하였다. 그리고 ‘안평태’(安平太)에서, 어느 기록은 ‘태’(太)를 ‘태’(泰)로 기술하기도 했다. 모두 같이 ‘크다’라는 뜻이다. 여기에서 ‘안’과 ‘평’과 ‘태’는 모두 ‘평안하다’라는 뜻이라고 한다. 그러나 그게 점진적인 뜻을 지녔다고 한다. 혼란스럽다. 그래서 나는 글자가 틀린 만큼 풀이도 달라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안’은 ‘거북하거나 괴롭지 아니하다.’라고 했으며, ‘평’은 ‘아무 일도 없고 걱정도 없다.’라고 했다, 그리고 ‘태’는 그대로 ‘크다’라고 풀었다.
 ‘악여이’(樂與餌)는 ‘멋진 음악과 맛 좋은 음식’을 가리킨다고 한다. 여기에서 ‘이’는 ‘먹이’ ‘미끼’ ‘동물의 사료’ ‘음식’ ‘먹다’ ‘낚싯밥’ ‘낚다’ ‘경단’ 등의 뜻을 지니고 있다. 이 중에서 나도 ‘음식’을 골랐다. 그리고 ‘도지출구’(道之出口)에서 ‘출구’는 ‘입에서 나온다.’라는 뜻으로, 곧 ‘말’을 의미한다고 말한다. 다시 말해서 ‘길’(道)의 말이다. 이에 대하여 어떤 기록에서는 ‘도지출언’(道之出言)이라고 씌어 있기도 하다. 또, ‘담호기무미’(淡乎其無味)는 ‘담담하여 아무 맛이 없다.’라고 하는데, 나는 ‘담’을 ‘싱겁다’라고 풀었다.
 ‘용지부족기’(用之不足旣)에서 ‘부족기’를 어느 기록에서는 ‘불가기’(不可旣)라고도 씌어 있다. ‘기’는 ‘진’(盡)과 같은 뜻으로 ‘다 쓸 수 없음’을 나타낸다고 한다. 그 뜻을, 나는 ‘써도 넉넉하게 그게 다 됨이 없다.’라고 풀었다. 


[나무 찾기]
 ‘악여이 과객지’(樂與餌 過客止, 멋진 음악과 맛 좋은 음식은 지나가는 나그네도 걸음을 멈추게 한다.)에서 나는 문득 ‘감나무’(Diospyros kaki)를 생각한다. 한겨울의 그 나뭇가지에 남아 있는 ‘까치밥’을 떠올렸기 때문이다.

터지는 주름 세며 무겁게 누리는 수명
돌담을 끼고 서서 넓힘의 그늘이더니
밤마다 시렁에 얹힌 근심 떨어지는 소리.

끝없이 사랑 외며 가볍게 열리는 영혼
쟁반을 받쳐 들고 빚음의 믿음이더니
늦가을 빈 가지 끝에 익은 등불 달았다.
-졸시 ‘감나무’ 전문

 ‘감나무’란, ‘감이 열리는 나무’라는 뜻이다. 그런데 ‘감’은 어떻게 그 말이 생기게 되었을까? 아마도 ‘갊다’의 ‘갊’에서 ‘감’이란 말이 생겼을 거라고 여겨진다. ‘갊다’는 원래 ‘감추다’라는 뜻이니, ‘감추고 싶을 만큼 맛있는 열매’라는 뜻이 아니었을까 한다. 그런가 하면, 고대국어에서 ‘감’을 일컫는 말은, ‘갇’이었다고 한다. 그 ‘갇’이 ‘갈’로 변하고 ‘갈’이 ‘갈암’으로 되었으며 ‘갈암’이 마침내 ‘감’으로 되었다고도 한다. 제주도 방언 중에 ‘갈중이’ 또는 ‘갈옷’이라는 게 있는데, 이는 ‘감물을 들인 옷’을 나타낸다.[(이하 생략)글: 김 재 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