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자, 그리고 나무 찾기

제34장, 커다란 길은 물이 넘쳐서(역: 녹시 김 재 황)

시조시인 2022. 2. 23. 13:52

길- 제34장

커다란 길은 물이 넘쳐서





  커다란 길은 물이 넘쳐서 그 왼쪽에도 오른쪽에도 이른다. 모든 것이 받들고 살지만 싫다고 하지 않고, 애쓴 보람을 이루어도 이름을 내세우지 아니하며, 모든 것을 옷 입혀서 기르나 임자가 되려고 하지 않는다.
 언제나 하고자 함이 없으니 ‘작게 있다’라고 이름 붙일 만하고, 모든 것이 따라도 임자가 되려고 하지 않으니 말 그대로 틀림없이 ‘크게 되다’라고 이름 붙일 만하다.
 그 끝까지 내내 스스로 크게 되려고 하지 않는다. 그 까닭에 아주 잘 그 큼을 이룰 수 있다. 


大道氾兮 其可左右. 萬物恃之而生 而不辭 功成不名有 衣養萬物 而不爲主. 常無欲 可名於小 萬物歸焉而不爲主 可名爲大. 以其終不自爲大 故能成其大
(대도범혜 기가좌우. 만물시지이생 이불사 공성불명유 의양만물 이불위주. 상무욕 가명어소 만물귀언이불위주 가명위대. 이기종불자위대 고능성기대)


[뜻 찾기]
 ‘대도범혜’(大道氾兮)에서 ‘범혜’는 ‘어디에서나 물이 범람하듯 넘쳐흐른다.’라는 뜻이라고 한다. 그리고 ‘기가좌우’(其可左右)는 ‘왼쪽이나 오른쪽이나 위나 아래나 어디에나 길(道)은 있다.’라는 뜻을 나타낸다. 나는 그저 ‘그 왼쪽에도 오른쪽에도 이른다.’라고 풀었다. 또, ‘이불사’(而不辭)에서 ‘불사’는 ‘수고로움을 사양하지 않는다.’라는 뜻이라고 한다. ‘사’는 ‘하소연하다’ ‘말하다’ ‘알리다’ ‘쓰다’ ‘청하다’ ‘거절하다’ 등의 뜻을 지닌다. 나는 그중에서 ‘거절하다’를 골랐다. 그러므로 ‘불사’는 ‘거절하지 않음’이다. 이를 다시 ‘싫다고 하지 않는다.’라고 쉽게 풀었다. 또, ‘공성불명유’(功成不名有)에서 ‘명유’는 ‘이름을 드러내거나 소유하는 일’을 가리킨다고 한다. 그리고 ‘의양만물’(衣養萬物)에서 ‘의양’은 ‘옷처럼 따뜻이 덮어서 기른다.’라는 뜻이다. 그러나 나는 그저 ‘옷을 입혀서 기른다.’라고 풀었다. 그런가 하면, ‘이불위주’(而不爲主)는 ‘주가 되지 않는다.’ 또는 ‘지배자인 체하지 않는다.’ 등의 뜻이라고 한다. 이 말을 풀어서 ‘마음대로 하지 않는다.’라고 할까 하다가 원문에 충실하게 ‘임자가 되려고 하지 않는다.’라고 했다. 
 ‘가명어소’(可名於小)와 ‘가명위대’(可名爲大)를 놓고 고심했다. 왜 ‘어소’와 ‘위대’라고 했을까. 어찌하여 둘 다 ‘어’로 하든지 ‘위’로 통일하지 않았을까. 글자가 다른 만큼 뜻도 달라져야 옳다. 그래서 나는 ‘어소’를 ‘작게 있다’라고 하였고 ‘위대’를 ‘크게 되다.’라고 하였다. 
 ‘이기종불자위대’(以其終不自爲大)에서 ‘종불자위대’는 ‘끝내 스스로 크다고 하지 않음’이라고 한다. 그런데 어느 기록은 여기가 ‘시이성인종불자위대’(是以聖人終不自爲大)로 되어 있기도 하다. 우리말에서 주어가 생략되는 경우가 많으므로 이는 별로 큰 의미가 없다. 나는 앞의 문장과 맞추어서 이를 ‘스스로 크게 되려고 하지 않는다.’라고 풀었다.

[나무 찾기]
 ‘만물귀언이불위주 가명위대’(萬物歸焉而不爲主 可名爲大, 모든 것이 따라도 임자가 되려고 하지 않으니 말 그대로 틀림없이 ‘크게 되다’라고 이름 붙일 만하다.)라는 문장을 읽으면서 나는 ‘느릅나무’(Ulmus davidiana var. japonica)를 생각한다.

산빛을 칠하다가 지쳐서 쉬는 손길
아주 작은 물소리도 마음으로 듣고 서서
햇살을 머리에 이고 가슴을 또 비우네.

날아온 작은 멧새 토닥여서 재워 놓고
불씨 같은 속삭임을 소중히 품어 보지만
바람은 등을 때리며 불신의 큰 못을 친다.

산 숲이 멋지지만 펼쳐서 눕힌 자리
나지막이 내린 어깨 딛고 사는 그늘에는
깨워도 눈뜨지 않는 꿈이 와서 머문다.
-졸시 ‘느릅나무’ 전문

 느릅나무는 좋은 그늘을 넓게 드리우기 때문에 많은 이들이 그 그늘로 가기를 원한다. 그러나 느릅나무는 임자는커녕 그저 말없이 서 있을 뿐이다. 그러니 어찌 ‘크게 된다.’라고 말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느릅나무의 이름은 ‘느른하다’에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느른하다’란, ‘힘이 없이 부드럽다.’라는 뜻이다. 이처럼 그 나뭇가지가 느른하다고 하여 그 이름이 생겼을 성싶다.[(이하 생략)글: 김 재 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