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자, 그리고 나무 찾기

제37장, 길은 늘 그렇게 함이 없으면서도(역: 녹시 김 재 황)

시조시인 2022. 2. 24. 12:31

길- 제37장

길은 늘 그렇게 함이 없으면서도  





 길은 늘 그렇게 함이 없으면서도 하지 않음이 없다. 작은 나라의 임금이 그대로 잘 지키면 모든 것이 앞의 어느 때에 스스로 바뀌게 된다.
 바뀌면서 ‘하고자 함’이 일어나면, 나는 앞으로 어느 때에 ‘이름 없는 수수함’으로 누르려고 한다.
 ‘이름 없는 수수함’이면 무릇 또한 앞으로 어느 때에 ‘하고자 하지 않음’이 없다. 고요함으로써 ‘하고자 하지 않음’이면 하늘 아래 앞으로 어느 때에 스스로 바로잡게 된다. 

道常無爲 而無不爲. 侯王若能守之 萬物將自化. 化而欲作 吾將鎭之以無名之樸. 無名之樸 夫亦將無不欲. 不欲以靜 天下將自定
(도상무위 이무불위. 후왕약능수지 만물장자화. 화이욕작 오장진지이무명지박. 무명지박 부역장무불욕. 불욕이정 천하장자정)


[뜻 찾기]
 ‘도상무위’(道常無爲)에서 ‘도상’은 ‘길(道)의 항상 불변의 참모습’이라고 한다. 나는 ‘불변’이라는 말을 몹시 싫어한다. 이 세상에 ‘변하지 않는 것’은 없다. 그래서 나는 제1장에서와 같이 ‘상’을 ‘스스로 그러함’이라고 했다. 그리고 ‘이무불위’(而無不爲)에서 ‘무불위’는 ‘하지 않음이 없다’ 또는 ‘못 하는 것이 없다’라는 뜻이라고 한다. 나는 앞의 뜻을 따랐다. 그다음의 ‘후왕약능수지 만물장자화’(後王若能守之 萬物將自化)는 제32장에도 나온다. 다만, ‘화’(化)가 ‘빈’(賓)으로 되어 있을 뿐이다. ‘화’는 ‘화하다’ ‘변함’ ‘가르치다’ ‘태어나다’ ‘자라다’ ‘죽다’ ‘다르다’ 등의 뜻을 지닌다. 나는 그중에서 ‘변함’의 ‘바뀌다’를 골랐다. 일반적으로 ‘자화’는 ‘스스로 변화 생성함’을 뜻한다고 한다.
 ‘오장진지이무명지박’(吾將鎭之以無名之樸)에서 ‘진지’는 ‘진압’, 즉 ‘눌러서 진정시킴’인데 ‘욕심을 눌러서 가라앉힘’을 의미한다. 또, ‘무명지박’은 ‘말로서 표현할 수 없는 길(道)의 순박함’을 뜻한다고 한다. 그렇지만 나는 이 ‘박’을 앞장에서와 같이 ‘수수함’으로 풀었다.
 ‘천하장자정’(天下將自定)에서 ‘정’은 ‘정하다’ ‘바로잡다’ ‘귀착하다’ ‘정해지다’ ‘다스려지다’ ‘반드시’ ‘꼭’ 등의 뜻이 있다. 나는 그중에서 ‘바로잡다’를 택했다. 일반적으로 ‘자정’은 ‘저절로 잘 다스려짐’을 나타낸다고 말한다.


[나무 찾기]
 ‘불욕이정 천하장자정’(不欲以靜 天下將自定, 고요함으로써 ‘하고자 하지 않음’이면 하늘 아래 앞으로 어느 때 스스로 바로잡게 된다.)이라는 문구에서 나는 먼저 ‘후박나무’(Machilus thunbergii)를 생각한다. 아마도 후박나무처럼 고요함을 좋아하는 나무는 없을 성싶다. 그렇지 않다면 어찌 흑비둘기가 이 나무의 품으로 날아들겠는가.


바다를 닮아 가듯 용서하며 사는 마음
황록색 불을 피운 시련 이긴 믿음으로
눈 감고 유선형 잎이 찾아가는 꿈나라.

머리를 풀고 우는 바닷바람 품에 안고
토닥여 재우는 정 그게 바로 천명인데
이 밤도 흑비둘기는 편히 쉬러 오겠네.
-졸시 ‘후박나무’ 전문

 후박나무는 ‘나무의 껍질이 두껍고 크다.’라고 하는 데에서 그 이름을 얻었다. 즉, ‘두껍다’라는 데에서 ‘후’(厚)를 얻었고, ‘크다’라는 데에서 ‘박’(朴)을 얻었다. 그 이름만 보아도 이 나무가 얼마나 후덕한 나무인지를 짐작할 수 있을 터이다.[(이하 생략)글: 김 재 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