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자, 그리고 나무 찾기

제38장, 베풂은 베풂이라고 하지 않는다(역: 녹시 김 재 황)

시조시인 2022. 2. 24. 18:38

베풂- 제38장

높은 베풂은 베풂이라고 하지 않는다.





 높은 베풂은 베풂이라고 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베풂이 있다. 낮은 베풂은 베풂을 잃지 않으려고 한다. 그러므로 베풂이 없다.
 높은 베풂은 함이 없으니 한다고 여기지 않고, 낮은 베풂은 이를 하면서 한다고 여긴다.
 높은 어짊은 하면서도 한다고 여기지 않는다. 높은 옳음은 하면서도 한다고 여긴다. 그리고 높은 몸가짐은 하면서도 따르지 않으면 곧 팔을 걷어붙이고 억지로 하게 한다.
 그 까닭에 길을 잃은 후에 베풂이요, 베풂을 잃은 후에 어짊이요, 어짊을 잃은 후에 옳음이요, 옳음을 잃은 후에 몸가짐이다.
 무릇 ‘몸가짐이라는 것’은 ‘참된 마음’과 ‘믿음’이 엷어진 것이니 어지러움의 머리이다. 앞서 깨닫는다는 것은 길의 빛남이고 어리석음의 맨 처음이다.
 그러므로 ‘씩씩한 사나이’는 그 두터운 곳에 머무르고 그 얄팍한 곳에 살지 않으며, 그 참된 곳에 머무르고 그 빛나는 곳에 살지 않는다. 그런 까닭에 저것을 버리고 이것을 가진다.

上德不德 是以有德. 下德不失德 是以無德. 上德無爲而無以爲 下德爲之而有以爲. 上仁爲之而無以爲 上義爲之而有以爲 上禮爲之而莫之應 則攘臂而扔之. 故失道而後德 失德而後仁 失仁而後義 失義而後禮. 夫禮者 忠信之薄 而亂之首. 前識者 道之華 而愚之始. 是以大丈夫處其厚 不居其薄 處其實 不居其華 故去彼取此
(상덕부덕 시이유덕. 하덕불실덕 시이무덕. 상덕무위이무이위 하덕위지이유이위. 상인위지이무이위 상의위지이유이위 상례위지이막지응 즉양비이잉지. 고실도이후덕 실덕이후인 실인이후의 실의이후예. 부예자 충신지박 이란지수. 전식자 도지화 이우지시. 시이대장부처기후 불거기박 처기실 불거기화 고거피취차)


[뜻 찾기]
 ‘상덕’(上德)은 ‘최상(最上)의 베풂(德)’ 또는 ‘베풂(德) 중의 최상급’이라고 한다. 그리고 ‘하덕’(下德)은 ‘베풂(德) 중의 최하급’ 또는 ‘하급의 베풂(德)’이라고 한다. 또, ‘부실덕’(不失德)은 ‘의식적으로 베풂을 잃지 않으려고 함’이라고 말한다.
 ‘무위이무이위’(無爲而無以爲)에서 ‘무위’는 ‘함이 없다’라는 뜻이다. 그리고 ‘무이위’는 글자 그대로는 ‘함으로써 없다’라는 뜻이니 ‘한다고 여기지 않는다.’라는 의미이다. 일반적으로 ‘무이위’는 ‘작위적인 일을 하지 않음’을 뜻한다고 한다. ‘이위’는 ‘시위’(施爲)로서 ‘실제로 시책을 영위하는 것’을 이른다고 한다.
 ‘양비이잉지’(攘臂而扔之)는 ‘완력을 써서 끌어당긴다.’라는 뜻이라고 한다. ‘양비’는 ‘팔을 걷어붙임’을 말하고, ‘잉지’는 ‘끌어당기다.’ 또는 ‘강제로 하게 하다.’ 등의 뜻을 지닌다. 
 ‘이란지수’(而亂之首)에서 ‘난지수’는 ‘어지럽게 되는 시초’를 가리킨다고 한다. 그러나 나는 글자 그대로 ‘어지러움의 머리’라고 했다. 그리고 ‘전식자’(前識者)에서 ‘전식’은 ‘남보다 먼저 깨닫는다.’라는 말이라고 한다. 그래서 나는 ‘앞서 깨닫는 것’이라고 했다. 그리고 ‘도지화’(道之華)에서 ‘화’는 ‘빛나다’ ‘꽃’ ‘빛’ ‘광택’ ‘아름답다’ ‘화려함’ ‘뛰어나다’ ‘뛰어남’ ‘요염하다’ ‘풍채’ ‘명성’ ‘명망’ ‘문덕’ ‘좋은 가계’ ‘분’ ‘화장품’ ‘흰머리’ ‘허식’ 등의 여러 뜻을 지닌다. 나는 그중에서 ‘빛나다’를 골랐다.
 ‘거피취차’(去彼取此)에서 ‘피’는 ‘빛나는 곳’을 나타내고 ‘차’는 ‘참된 곳’을 가리킨다.


[나무 찾기]
 ‘처기실 불거기화’(處其實 不居其華, 그 참된 곳에 머무르고 그 빛나는 곳에 살지 않는다.)라는 말은, 곧 ‘참된 것을 좋아하고 빛나는 것을 싫어한다.’라는 의미도 된다. 그러므로 나는 문득 ‘물박달나무’(Betula davurica)를 생각하게 된다.

누더기를 걸치고 홀연히 내 앞에 나타난다.
내가 그토록 오래 찾아 헤맸던 녹립 시인.
먼 길을 걸어온 그림자가 마냥 출렁거린다.
가난한 자는 물소리만 듣고도 배부른가.
우면산 가파른 산길에 서 있는 저 물박달나무. 
-졸시 ‘물박달나무’ 전문


 물박달나무는 ‘누더기와 같은 느낌의 껍질’을 지님으로써 ‘빛남’을 버리고 ‘참’을 가졌다. 여기에서의 ‘빛남’이란 ‘겉치레’를 말하고 ‘참’이란, ‘실속’을 말한다. 한 마디로, 물박달나무는 씩씩한 ‘대장부’의 나무이다.
 ‘물박달나무’에서 ‘물’은 ‘축축한 곳을 좋아한다.’라는 의미이다. 그리고 ‘박달’은, ‘밝’(明)과 ‘달’(山)에서 유래되었다고도 하고, ‘박’(頂, 頭)과 달(山)에서 유래되었다고도 한다.[(이하 생략)글: 김 재 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