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고시조 감상 419

愚夫도 알며하거니/ 이 황

275. 愚夫도 알며하거니/ 이 황 [원본] 愚夫도 알며하거니 긔 아니 쉬운가 聖人도 몯다하시니 긔 아니 여려운가 쉽거나어렵거나듕에 늙난 주를 몰래라. [역본] 멍청해도 알며 하니 그게 아니 쉬운 건가 거룩해도 못 다 하셔 그게 아니 어려운가 쉽거나 또 어렵거나 늙는 줄을 모른다. [감상] 이황(李滉 1501~ 1570)은 조선 전기의 학자이자 문신이다. 자(字)는 ‘경호’(景浩)이고 호(號)는 ‘퇴계’(退溪) 또는 ‘퇴도’(退陶) 및 ‘도수’(陶搜)이다. 1534년 문과에 급제한 후에 여러 벼슬을 거치고 1546년 양진암에서 독서에 전념하였는데 이 때에 ‘퇴계’라는 별호를 사용하였다. 1561년 도산서당을 지었고 1568년 판중추부사가 되었으며 1569년 사직 상소를 올리고 낙향하였다고 한다. 시호는 ..

當時에 녀든 길흘/ 이 황

274. 當時에 녀든 길흘/ 이 황 [원본] 當時에 녀든 길흘 몃해를 바려두고 어듸가 단니다가 이제야 도라온고 이제나 도라오나니 년듸 마삼 마로리. [역본] 선비 때 다니던 길, 몇 년을 버려 두고 어디 가서 다니다가 이제서야 돌아왔나 이렇게 돌아온 지금 다른 마음 안 쓰리. [감상] 이황(李滉 1501~ 1570)은 조선 전기의 학자이자 문신이다. 자(字)는 ‘경호’(景浩)이고 호(號)는 ‘퇴계’(退溪) 또는 ‘퇴도’(退陶) 및 ‘도수’(陶搜)이다. 1534년 문과에 급제한 후에 여러 벼슬을 거치고 1546년 양진암에서 독서에 전념하였는데 이 때에 ‘퇴계’라는 별호를 사용하였다. 1561년 도산서당을 지었고 1568년 판중추부사가 되었으며 1569년 사직 상소를 올리고 낙향하였다고 한다. 시호는 문순(..

古人도 날 못보고/ 이 황

273. 古人도 날 못보고/ 이 황 [원본] 古人도 날 못보고 나도 古人 못뵈 古人을 못뵈와도 녀던 길 알패 잇네 녀던 길 알패 잇거든 아니 녀고 엇덜고. [역본] 옛 성현도 날 못 보고 나도 그분 못 뵈었네 옛 성현 못 뵈어도 가신 길이 앞에 있네 그 길이 내 앞에 있으니 아니 가고 어찌할까. [감상] 이황(李滉 1501~ 1570)은 조선 전기의 학자이자 문신이다. 자(字)는 ‘경호’(景浩)이고 호(號)는 ‘퇴계’(退溪) 또는 ‘퇴도’(退陶) 및 ‘도수’(陶搜)이다. 1534년 문과에 급제한 후에 여러 벼슬을 거치고 1546년 양진암에서 독서에 전념하였는데 이 때에 ‘퇴계’라는 별호를 사용하였다. 1561년 도산서당을 지었고 1568년 판중추부사가 되었으며 1569년 사직 상소를 올리고 낙향하였다고 ..

天雲臺 도라 드러 / 이 황

271. 天雲臺 도라 드러 / 이 황 [원본] 天雲臺 도라 드러 玩樂齋 蕭洒한데 萬卷生涯로 樂事 無窮하얘라 이듕에 往來風流를 닐러 므슴할고. [역본] 높은 돈대 돌아들어 학문 서재 깨끗한데 많은 책에 묻힌 삶이 즐거운 일 끝이 없다 이 중에 즐기는 풍류를 말할 필요 있을까. [감상] 이황(李滉 1501~ 1570)은 조선 전기의 학자이자 문신이다. 자(字)는 ‘경호’(景浩)이고 호(號)는 ‘퇴계’(退溪) 또는 ‘퇴도’(退陶) 및 ‘도수’(陶搜)이다. 1534년 문과에 급제한 후에 여러 벼슬을 거치고 1546년 양진암에서 독서에 전념하였는데 이 때에 ‘퇴계’라는 별호를 사용하였다. 1561년 도산서당을 지었고 1568년 판중추부사가 되었으며 1569년 사직 상소를 올리고 낙향하였다고 한다. 시호는 문순(文..

春風에 花滿山하고/ 이 황

270. 春風에 花滿山하고/ 이 황 [원본] 春風에 花滿山하고 秋夜에 月滿臺라 四時佳興이 사람과 한가지라 하물며 魚躍鳶飛 雲影天光이야 어내 그지 이슬고. [역본] 봄바람에 가득 산꽃, 가을밤에 꽉 돈대 달 네 계절도 좋은 흥취, 사람이나 마찬가지 하물며 생동과 조화야 어찌 다함 있겟는가. [감상] 이황(李滉 1501~ 1570)은 조선 전기의 학자이자 문신이다. 자(字)는 ‘경호’(景浩)이고 호(號)는 ‘퇴계’(退溪) 또는 ‘퇴도’(退陶) 및 ‘도수’(陶搜)이다. 1534년 문과에 급제한 후에 여러 벼슬을 거치고 1546년 양진암에서 독서에 전념하였는데 이 때에 ‘퇴계’라는 별호를 사용하였다. 1561년 도산서당을 지었고 1568년 판중추부사가 되었으며 1569년 사직 상소를 올리고 낙향하였다고 한다. ..

山前에 有臺하고/ 이 황

269. 山前에 有臺하고/ 이 황 [원본] 山前에 有臺하고 臺下에 流水이로다 떼 만흔 갈며기난 오명가명 하거든 엇더타 皎皎白駒는 머리 마음 하난고. [역본] 산 앞에 돈대 있고 돈대 아래 흐르는 물 수많은 갈매기는 오락가락 노니는데 그 어찌 흰 망아지는 멀리 마음 두는가. [감상] 이황(李滉 1501~ 1570)은 조선 전기의 학자이자 문신이다. 자(字)는 ‘경호’(景浩)이고 호(號)는 ‘퇴계’(退溪) 또는 ‘퇴도’(退陶) 및 ‘도수’(陶搜)이다. 1534년 문과에 급제한 후에 여러 벼슬을 거치고 1546년 양진암에서 독서에 전념하였는데 이 때에 ‘퇴계’라는 별호를 사용하였다. 1561년 도산서당을 지었고 1568년 판중추부사가 되었으며 1569년 사직 상소를 올리고 낙향하였다고 한다. 시호는 문순(文純..

幽蘭이 在谷하니/ 이 황

268. 幽蘭이 在谷하니/ 이 황 [원본] 幽蘭이 在谷하니 自然이 듣디됴해 白雲이 在山하니 自然이 보디됴해 이듕에 彼美一人을 더욱 닛디 못하얘. [역본] 난 향기는 골에 가득 그 정경이 가기 좋고 하얀 구름 산에 가득 그 풍경이 보기 좋네 이 중에 저 고운 분을 더욱 잊지 못하네. [감상] 이황(李滉 1501~ 1570)은 조선 전기의 학자이자 문신이다. 자(字)는 ‘경호’(景浩)이고 호(號)는 ‘퇴계’(退溪) 또는 ‘퇴도’(退陶) 및 ‘도수’(陶搜)이다. 1534년 문과에 급제한 후에 여러 벼슬을 거치고 1546년 양진암에서 독서에 전념하였는데 이 때에 ‘퇴계’라는 별호를 사용하였다. 1561년 도산서당을 지었고 1568년 판중추부사가 되었으며 1569년 사직 상소를 올리고 낙향하였다고 한다. 시호는 ..

淳風이 죽다하니/ 이 황

267. 淳風이 죽다하니/ 이 황 [원본] 淳風이 죽다하니 眞實로 거즛마리 人性이 어디다하니 眞實로 올한마리 天下에 許多英才를 소겨 말삼할가. [역본] 좋은 풍속 죽었다니 정말 그 말 거짓말이 사람 성품 어질다니 정말 그 말 옳은 말이 세상에 뛰어난 인재 왜 속여서 말할까. [감상] 이황(李滉 1501~ 1570)은 조선 전기의 학자이자 문신이다. 자(字)는 ‘경호’(景浩)이고 호(號)는 ‘퇴계’(退溪) 또는 ‘퇴도’(退陶) 및 ‘도수’(陶搜)이다. 1534년 문과에 급제한 후에 여러 벼슬을 거치고 1546년 양진암에서 독서에 전념하였는데 이 때에 ‘퇴계’라는 별호를 사용하였다. 1561년 도산서당을 지었고 1568년 판중추부사가 되었으며 1569년 사직 상소를 올리고 낙향하였다고 한다. 시호는 문순(文..

煙霞로 지블 삼고/ 이 황

266. 煙霞로 지블 삼고/ 이 황 [원본] 煙霞로 지블 삼고 風月로 버들 사마 太平聖代에 病으로 늘거가뇌 이듕에 바라난 이른 허므리나 업고쟈. [역본] 안개 놀로 집을 삼고 바람 달로 벗을 삼아 백성 편한 이 시대에 촌 병으로 늙어 가네 이럴 때 바라는 일은 허물이나 없기를. [감상] 이황(李滉 1501~ 1570)은 조선 전기의 학자이자 문신이다. 자(字)는 ‘경호’(景浩)이고 호(號)는 ‘퇴계’(退溪) 또는 ‘퇴도’(退陶) 및 ‘도수’(陶搜)이다. 1534년 문과에 급제한 후에 여러 벼슬을 거치고 1546년 양진암에서 독서에 전념하였는데 이 때에 ‘퇴계’라는 별호를 사용하였다. 1561년 도산서당을 지었고 1568년 판중추부사가 되었으며 1569년 사직 상소를 올리고 낙향하였다고 한다. 시호는 문순..

이런들 엇더하며/ 이 황

265. 이런들 엇더하며/ 이 황 [원본] 649. 이런들 어떠하며/ 이 황 [원본] 이런들 엇더하며 뎌런들 엇더하료 草野愚生이 이러타 엇더하료 하말며 泉石膏肓을 고텨 므슴하료. [역본] 아런들 어떠하며 저런들 어떠할까 시골에 묻힌 사람 이렇다고 어찌할까 하물며 자연사랑병을 고쳐서는 뭘 할까. [감상] 이황(李滉 1501~ 1570)은 조선 전기의 학자이자 문신이다. 자(字)는 ‘경호’(景浩)이고 호(號)는 ‘퇴계’(退溪) 또는 ‘퇴도’(退陶) 및 ‘도수’(陶搜)이다. 1534년 문과에 급제한 후에 여러 벼슬을 거치고 1546년 양진암에서 독서에 전념하였는데 이 때에 ‘퇴계’라는 별호를 사용하였다. 1561년 도산서당을 지었고 1568년 판중추부사가 되었으며 1569년 사직 상소를 올리고 낙향하였다고 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