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인생, 나의 문학(5) 나의 인생, 나의 문학(5) 김 재 황 1986년, 나는 온 가족을 이끌고 서울로 돌아왔다. 그리고는 관악산 자락에 작은 집을 마련했다. 동네의 이름은 봉천 11동이었으나 지금은 인헌동으로 이름이 바뀌었다. 우리 집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낙성대(落星垈)가 있다. 낙성대는 고려의 명장인 강감찬(姜邯瓚)이.. 약력 2010.08.18
나의 인생, 나의 문학(4) 나의 인생, 나의 문학(4) 김 재 황 드디어 삼성 그룹의 농업전문직 입사시험이 시작되었다. 1차 시험과 2차 시험을 거치는 동안, 수많은 응시생들이 탈락되고 그 중 수십 명이 남게 되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그 중에 나도 끼이게 되었으니, 정말 나로서는 기적 같은 일이 아닐 수 없었다. .. 약력 2010.06.09
나의 인생, 나의 문학(3) 나의 인생, 나의 문학(3) 김 재 황 1965년 2월, 나는 고려대학교를 졸업하였다. 이제는 하루 빨리 병역의무를 완수하는 게, 가장 중요한 일이었다. 그런데 어쩐 일인지, 아무런 통지가 없었다. 나는 서울병무청으로 달려갔다. 담당자는 서류를 뒤적이더니 내가 기피자로 되어 있다고 말했다. 나는, 입대연.. 약력 2010.04.13
나의 인생, 나의 문학(2) 나의 인생, 나의 문학(2) 김 재 황 1955년, 나는 은로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선린중학교로 진학하였다. 이는, 순전히 어머니의 강권에 의한 일이었다. 세상을 살아가려면 무엇보다 돈이 필요하고, 돈을 만지는 은행에 취직하려면 반드시 상업학교로 가야 한다고 하셨다. 그 때만 하여도 중학교를 선택하여 .. 약력 2010.04.02
나의 인생, 나의 문학(1) 나의 인생, 나의 문학(1) 김 재 황 1942년 8월, 나는 옛 고구려 영토인 만주 땅의 봉천에서 태어났다. 지금 그 곳의 지명은 바로 심양(瀋陽, Shenyang)이다. 물론, 내가 4살 되던 해에 우리나라가 광복을 맞음으로써 부모님의 손을 잡고 서울로 돌아왔다. 그 다음해, 나는 집안 사정에 의하여 할머.. 약력 2010.03.17
김재황 연보 김재황(金載晃) 연보 1942년 출생. 초등학교에 다니기 전, 고향인 파주의 야동(野洞)에 살면서 산으로 혼자 돌아다님. 이 때 여러 나무와 친해짐. 1949년. 서울에서 창신초등학교에 입학하였다가 종암초등학교로 전학. 그러나 2학년이 되었을 때, 6.25전쟁이 발발하여 부친을 따라 제주도로 가.. 약력 2009.09.07
녹색시인 김재황 약력 김 재 황 시인은 고려대학교 농학과를 졸업했다. 졸업 후 농촌지도사로 근무하다가 중앙일보사 농림직 간부 사원으로 전직하여 용인자연농원(현 에버랜드) 개발에 참여하였고 언양농장장 및 대구제일농장장의 직책을 수행했으나, 시를 쓰기 위해 사직하고 서귀포에서 귤밭 농장을 10년 동안 자영하였.. 약력 2008.03.28
'아호'에 대하여 '아호'에 대하여 국어사전에 '아호'(雅號)의 풀이는, 문인이나 화가나 학자 등이 '본이름 외에 따로 지어 부르는 이름'이라고 되어 있습니다. 나는 원래부터 '호'를 사용하는 게 어쩐지 곰팡내가 나는 듯하여 외면하여 왔습니다. 그런데 인터넷을 하려다 보니 '아이디'가 필요하였고, 그래서 하나 만들어.. 약력 2006.07.22
연보 김재황(金載晃) 연보 1942년 출생. 초등학교에 다니기 전, 고향인 파주의 야동(野洞)에 살면서 산으로 혼자 돌아다님. 이 때 여러 나무와 친해짐. 1949년 서울에서 창신초등학교에 입학하였다가 종암초등학교로 전학. 그러나 2 학년이 되었을 때, 6.25전쟁이 발발하여 부친을 따라 제주도로 가.. 약력 2005.10.01
내 작품평1 /김재황의 작품세계/ 순수, 그 자성의 미학 김복근 (창원대 강사, 문학박사) “목멱산(木覓山) 아래 멍청한 사람이 있는데, 어눌하여 말을 잘 하지 못하고 성품은 게으르고 졸렬(拙劣)한 데다, 시무(時務)도 알지 못하며 바둑이나 장기는 더더욱 알지 못하였다. 남들이 이를 욕해도 따지지 않았고, 이를 .. 약력 2005.10.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