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시 30편) 24. 지지 않는 달 지지 않는 달 김 재 황 여전히 바로 그 자리에 둥근 보름달 하나 열려 있다. 작은 창밖에는 일그러진 반달이 떴다가 지고 초승달이 돌아서서 종종걸음을 쳐도 예전 그 모습 그대로 환한 보름달 하나 매달려 있다. 사랑아, 이렇듯 모진 세상을 살면서 어찌 보름달처럼 둥글기만 했겠는가. 향기롭기만 했.. 시 2009.06.14
(다시 시 30편) 17. 손 씻은 하늘 손 씻은 하늘 김 재 황 바위의 움푹 팬 자리에 빗물이 고여 있고, 늙은 소나무가 고달픈 그림자를 뻗어서 그 물에 손을 씻는다. 세상을 안은 눈빛이 잔잔하다. 내 호기심이 소나무께로 다가가서 그 그림자의 손을 잡아당기자, 산의 뿌리까지 힘없이 딸려 올라오고 빈 하늘만 몸을 떤다. 시 2009.06.05
(다시 시 30편) 14. 맑은 눈동자 맑은 눈동자 김 재 황 이 세상에서 가장 맑은 건 들꽃의 눈동자 이는, 천성으로 그렇다기보다도 태어나면서 맨 처음 새벽하늘을 보았기 때문이다. 들꽃과 눈이 마주치면 어린 샘물의 옹알이가 들린다. 시 2009.06.01
내가 좋아하는 시조- 딸과 아빠 딸과 아빠 김 재 황 동무들과 놀고 있던 다섯 살의 어린 딸이 날 보자 달려와서 내 손을 꼬옥 잡으며 “얘들아, 우리 아빠다!” 자랑스레 말했다네. 세상에 내세울 건 하나 없는 나였지만 딸에겐 이 아빠가 으뜸으로 멋졌을까 아주 먼 일이긴 해도 어제인 듯 파랗다네. 지금도 그때 그 일을 가슴 속에 안.. 시조 2008.12.12
(자선시조 30편) 9. 동그라미 그 속에는 동그라미 그 속에는 김 재 황 눈으로 새를 그려 물가에다 놓아 주니 마름 잎 언저리에 목울음을 쏟아 놓고 가벼운 날갯소리로 하늘 높이 날아갔네. 새가 머물렀던 곳에 물주름은 사라지고 실잠자리 찾아와서 동그라미 치고 있네. 그 안을 들여다보니 세상 일이 모두 보여. 시조 2008.11.04
(자선시 30편) 14. 혈서 혈 서 김 재 황 세상을 더듬던 손가락 끝 가장 가려운 살점 베어낸 자리에서 전신의 아픔보다 더한 꽃이 핀다. 그늘진 쪽에 서서 몇 줌 스며든 햇빛에 눈멀지 않고 오직 순수하게 펼친 무명 위에 뜨거운 마음을 적는 아, 속으로 불붙는 나무의 모습 찬바람에 붉은 꽃이 진다. 빛나던 잎에 하나 둘 피가 .. 시 2008.10.08
(자선시 30편) 3. 치자꽃 향기 치자꽃 향기 김 재 황 오늘은 그가 냉수 한 바가지 달랑 떠서 들고 나를 찾아왔다. 물푸레마음이 들어앉았던 물인가 맑은 하늘이 가득 담기어 있다. 내가 받아서 마시니 단박에 온 세상이 파랗다 나는 무엇으로 손님을 대접해야 하나 아무것도 내놓을 게 없다. 내가 그저 활짝 흰 이를 내보이니 그는 답.. 시 2008.09.29
등꽃 아포리즘 ♧♧♧ 이 세상의 파도가 거세면 거셀수록 우리는 꿋꿋한 모습으로 살아가야 해요 한 마리의 푸른 용처럼 꿈틀거리는 저 힘찬 등나무의 참모습을 보아요 비록, 시렁을 의지해서 꽃을 피우지만 그 맑고 환한 얼굴이 위안을 주어요 더위가 찾아와서 나를 괴롭힌다고 하여도 나는 이제 기쁘게 찾아갈 곳.. 화목 2008.06.07
노래하는 세상 노래하는 세상 모처럼 친구 셋이 저녁을 함께 먹고 헤어지기 섭섭하여 노래방을 찾아갔네 아직은 녹슬지 않은 지난날의 애창곡. *지나가면 별것 아닌 일들이 막상 닥치면 마음에 고통을 줄 때가 많다. 사람은 그리 생겨먹은 듯하다. 모처럼 친구를 만났으니 모든 걱정거리는 잠시 접어두고 노래방으로.. 생활시조 2006.03.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