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쥬르, 나폴레옹

(106) 내 사전에는 '할 수 없다.'라는 말이 없다

시조시인 2008. 12. 12. 05:52

(106)

  중국의 깊은 산골에 ‘우공’(愚公)이라는 90살 가까운 노인이 살고 있었답니다. 그가 살고 있는 곳은, 사방이 70리에 높이가 만 길이나 되는 산이 떡하니 앞을 가로막아서 다른 지방으로 오고가기가 매우 힘들었다고 합니다. 어느 날, 우공은 식구들을 모두 모아놓고 말했습니다.

“나는 저 험한 산을 평평하게 하여 남쪽으로 곧장 길을 내려고 한다. 너희들 생각은 어떠냐?”

모두들 찬성하였으나, 그 부인만은 이의를 제기하였습니다. ‘이의’(異議)는 ‘의론이나 의견을 달리함’을 말하고, ‘제기’(提起)는 ‘드러내어 문제를 일으킴’을 말합니다.

“당신의 힘으로는 조그만 언덕 하나 파헤치기도 어려운데, 어찌 이 큰 산을 깎아 내려는 거예요. 또, 파면 흙은 어찌하고요?”

그러자, 우공은 아무 어려움이 없다는 듯이 아내의 말을 단번에 물리쳐 버렸습니다.

“흙은 발해에다 버리지.”

‘발해’(渤海)는 고구려의 장수인 대조영(大祚榮)이 세운 나라입니다. 요동을 제외한 고구려의 옛 영토를 거의 회복하여 한때 세력을 크게 떨쳤지요. 그러나 애석하게도, 신라 말엽에 요(遼)나라에게 패망당하고 말았습니다.

우공은 세 아들을 비롯하여 여러 손자들과 함께 돌을 깨고 흙을 파서 삼태기에 담고는 발해까지 나르기 시작했습니다. 하루는 그 모양을 보고, 황해 근처에 살 있는 ‘지수’(智叟)라는 사람이 비웃었습니다. 그러나 우공은 태연하게 말했습니다.

“비록 앞날이 얼마 남지 않았으나, 내가 죽으면 아들이 남을 테고, 그 아들이 손자를 낳고 그 손자가 또 아들을 낳고…, 그렇게 자자손손 이어가면 언젠가는 반드시 저 높은 산이 평평해질 날이 오겠지.”

‘자자손손’(子子孫孫)은 ‘자손의 여러 대’를 말합니다. 여기에서 ‘대’(代)는 ‘이어 내려오는 한 집안의 줄기’를 가리키지요.

프랑스 병사들이 열심히 산길을 가고 있을 때였습니다. 한 병사가 달려와서 나폴레옹에게 보고했습니다.

“눈길이 허물어질 듯합니다. 이 이상 더 나아갈 수 없습니다.”

그러자, 나폴레옹은 모든 부하들이 알아들을 수 있도록 크게 외쳤습니다.

“내 사전에는 ‘할 수 없다’라는 말이 없다.”

여기에서 ‘내 사전’이란, ‘코르시카 사전’일 겁니다. 나폴레옹은 바로 코르시카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그야 어떻든지, 그 후로부터 지금까지 이 이야기는 인구에 회자되고 있습니다. ‘인구(人口)에 회자(膾炙)되다.’는, 육회와 불고기를 사람들이 좋아하듯이 ‘사람들의 입에 널리 퍼져서 오르내리는 것’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주로 훌륭한 글이나 미담 등이 사람들의 화제에 자주 오르내릴 경우에 쓰는 표현입니다. ‘회’(膾)라고 하면 언뜻 ‘생선회’(生鮮膾)가 생각나겠으나, 여기에서는 ‘육회’(肉膾)를 가리킵니다. 중국 사람들은 좀처럼 날것은 안 먹지만, 이 ‘육회’만은 즐긴다고 합니다. 그리고 ‘자’(炙)는 ‘구운 고기’를 뜻하는데, 이 경우도 물고기가 아니고 ‘돼지고기’나 ‘쇠고기’를 가리키는 말입니다. 그러므로 ‘회’와 ‘자’는 가장 맛있고 귀한 음식을 나타내는 겁니다. ‘인구에 회자되다’라는 말은, 그렇게 되어서 생겨났다고 합니다. 여기에도 고사가 있습니다.

당나라 때에 ‘한악’이라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는 어렸을 때부터 아주 총명하였답니다. 그가 10살이 되었을 때에 많은 시(詩)를 지었는데, 그 당시에 유행하던 시들을 한 단계 뛰어넘은 새로운 경지였다고 합니다.

그래서 자연히 여러 사람의 입에 오르내리게 되었을 성싶습니다. 이처럼 그의 시가 여러 사람의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며 입으로부터 떨어지지 않았다는 데서 ‘인구에 회자된다.’는 말이 생겨나게 되었다는군요.   

나폴레옹은 군악대에게 북을 울리고 나팔을 불도록 하였습니다. 이를, 한자말로는 ‘격고명금’(擊鼓鳴金)이라고 합니다. 이는, 글자 그대로 ‘북을 치고 징을 울림’을 뜻합니다. 그 내용을 보면, ‘나팔’과 ‘징’의 차이만 있을 뿐입니다. 물론, 북을 울리고 나팔을 불거나 징을 치는 이유는, 군사들의 사기를 올리기 위함입니다. 그러나 때에 따라서는 북과 징을 침으로써 군사들을 지휘하기도 했답니다. 즉, ‘북을 치면 앞으로 나아가고 징을 울리면 물러나는 방식’으로 말입니다.(김재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