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쥬르, 나폴레옹

(105) 얼음 덮인 산길을 올라가다

시조시인 2008. 12. 11. 22:37

(105)

  5월이라고 하여도, 높은 산은 아직도 한겨울입니다. 알프스에는 흰 눈이 덮여서 눈이 부실 정도였습니다. 그러나 밤이면 달빛 아래 교교히 펼쳐진 눈의 경치가 마음을 더없이 을씨년스럽게 만들었습니다. ‘교교(皎皎)하다.’는 ‘흰 빛깔이 깨끗함’을 이릅니다. 그리고 ‘을씨년스럽다.’는 ‘남이 보기에 매우 쓸쓸한 상황’ 또는 ‘날씨나 마음이 쓸쓸하고 흐린 상태’를 말합니다. 원래, 이 ‘을씨년-’은, 1905년의 ‘을사년’에서 나온 말이라고 합니다. ‘을사년’에 무슨 일이 저질러졌는지는 알지요? 우리나라 외교권을 일본에게 빼앗긴 ‘을사륵약’은, 지금 생각해도 치가 떨리고 분통이 터질 일입니다. 왜 ‘늑약’(勒約)이라고 하는지는 알고 있지요? 다시 말하면, ‘강제적으로 맺어진 약속’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그 당시의 우리나라 사람들은 얼마나 침통하고 비장한 분위기에 휩싸였을지, 모두 상상이 될 겁니다. 그날 이후로, 몹시 쓸쓸하고 어수선한 날을 맞을 때에 ‘을사년스럽다.’라고 표현하게 되었는데, 그게 차츰 변하여 ‘을씨년스럽다.’로 쓰이게 되었다고 합니다.

프랑스 군인들은 각각 자기 몫의 식량을 짊어지고, 또 총을 어깨에 멘 채로 눈과 얼음이 덮인 험한 산길을 올라갔습니다. 눈이 어찌나 깊이 쌓였는지, 걸음을 내딛을 때마다 다리가 푹푹 무릎까지 빠져 들어갔지요. 더군다나 가파른 길에 얼음마저 덮여 있었으므로, 한 발자국 한 발자국을 옮기기가 여간 조심스러운 게 아니었습니다. 어쩌다가 길을 잘못 밟으면 낙장거리를 하여 곧 천야만야한 벼랑 밑으로 떨어지게 됩니다. ‘낙장거리’는 ‘네 활개를 쫙 벌리고 뒤로 벌떡 자빠짐’을 이르는 순우리말입니다. 그리고 ‘천야만야하다.’(千耶萬耶-)는 ‘천 길인가 만 길인가’의 뜻으로 ‘썩 높거나 깊다.’라는 말입니다.

군사들의 행군이야 그렇다손 치더라도, 무엇보다 대포를 운반하는 일이 큰 걱정거리였습니다. 대포는, 큰 썰매를 만들어서 그 위에 얹은 후에 끌거나 어깨에 메고서 옮기었습니다. 한 문의 대포를 운반하는 데 자그마치 1백 명의 병사들이 붙어 있을 정도였답니다. ‘문’(門)은 ‘포나 기관총 따위를 세는 단위’를 말합니다.

길고 긴 행렬이 힘차게 계속되었고, 그 중에서도 앞장서서 가는 군인들은 더욱 용왕매진하였습니다. ‘용왕매진’(勇往邁進)은 ‘거리낌 없이 힘차고 용감하게 나아감’을 이릅니다. 다른 말로는 ‘용왕직전’(勇往直前) 또는 ‘용왕직진’(勇往直進)이라고도 합니다.

이럴 경우에는, 너무 좌고우면해도 안 되지만, 그렇다고 너무 욕속부달의 마음을 가져도 안 됩니다. ‘좌고우면’(左顧右眄)은 ‘이쪽과 저쪽을 둘러보고 이리저리 생각하면서 앞뒤를 재고 망설이며 일을 결정짓지 못함’을 가리킵니다. 다른 말로는, ‘좌고우시’(左顧右視)나 ‘좌우고면’(左右顧眄)이나 ‘좌우고시’(左右顧視) 등이 있습니다. 그리고 ‘욕속부달’(欲速不達)은 ‘일을 너무 급히 하려고 하면 도리어 이루지 못함’을 나타냅니다. 속히 하고자 하는 마음을, ‘욕속지심’(欲速之心)이라고 하지요.

프랑스 군인들은 고생이 많았습니다. 길이 좁아서 앞으로 가기가 어려울 때도 있었는데, 그럴 때마다 얼음을 깎아 내고 바위를 헐어 내어서 길을 닦으며 나아갔습니다.

게다가 장사진을 이루고 갔겠지요. ‘장사진’(長蛇陣)은 ‘많은 사람들이 줄을 지어서 길게 늘어선 것’을 표현하는 말입니다. 원래 이 말은 전쟁에서 쓰던 ‘진’(陣) 하나를 가리키는 말이었습니다. 글자 그대로 긴 뱀과 같이 길게 늘어선 ‘군대의 진’을 가리킵니다. ‘진’은, 전투를 하거나 야영을 할 때, ‘군사가 머물러 둔(屯)을 치던 곳’이고, ‘둔을 치다.’는 ‘많은 사람이 어떤 한 곳에 떼를 이루어 모여 있다.’는 뜻입니다.

이게 말은 쉽지만, 실제로 그런 길을 가려면 여간 힘든 게 아닙니다. 그 높은 고개에서 그 무거운 대포를 끌고 그 차가운 눈과 얼음 속을 허기를 참으며 가야 하는 고통을 한 번 생각해 보세요. 그러나 나폴레옹은, 힘든 일이 앞에 닥칠 때면 아마도 ‘우공이산’의 일을 떠올렸을 듯합니다. ‘우공이산’(愚公移山)은, ‘우공이 산을 옮긴다.’는 뜻으로 ‘일이 많다고 포기하지 않고 힘써 쉬지 않으면 큰일도 반드시 이룩할 수 있음’을 이르는 말입니다. 여기에도 옛 이야기가 있지요. (김재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