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쥬르, 나폴레옹

(113) 황후가 된 조제핀

시조시인 2008. 12. 19. 06:53

(113)

   남자를 잘 만난 덕분에 과부였던 조제핀은 황후가 되었습니다. 결혼 당시에 나이가 33살이었으니, ‘청상과부’라고 할 수 있습니다.  ‘청상과부’(靑孀寡婦)는 ‘나이가 젊었을 때에 남편을 여읜 여자’를 가리킵니다. 달리, ‘청상과수’(靑孀寡守)라고도 합니다. 그런 여자가 개가를 하여 황후가 되었다니 놀랍습니다. ‘개가’(改嫁)는 ‘시집갔던 여자가, 남편이 죽거나 남편과 이혼하거나 하여 다른 남자에게 다시 시집가는 일’을 말합니다. 다른 말로는, ‘재가’(再嫁)나 ‘후가’(後嫁) 등이 있습니다. 순우리말로는 ‘후살이’라고 하지요.

황후가 된 조제핀은, 막강한 힘과 호사스런 사치를 즐겼습니다. ‘막강’(莫强)은 ‘더할 수 없이 강함’을 뜻하고, ‘사치’(奢侈)는 ‘제 분수에 지나치게 옷이나 음식이나 거처 따위를 치레함’을 말합니다. 특히 허영심이 강한 조제핀은 옷에 욕심을 부림으로써 황후로 있었던 5년여 동안에 만들어 입은 드레스가 7백 벌이 넘었다고 하며, 그 드레스들은 당시의 유럽 패션에도 큰 변화를 가져올 만큼 화려했다고 합니다. ‘허영심’(虛榮心)은 ‘허영에 들뜬 마음’이고, ‘드레스’(dress)는 ‘허리를 잘록하게 보이도록 디자인한 여성용 원피스’이며, ‘패션’(fashion)은 ‘주로 옷차림 따위에서 특정한 시기에 유행하는 양식’을 말합니다.

‘설마, 그렇기야 했겠나?’라고 고개를 갸우뚱하는 사람도 있을 겁니다. 그러나 조제핀은, 어깨가 드러나게 얇고 하늘거리는 천으로 만든 드레스에 화려한 숄로 멋을 한껏 부렸는데, 많은 사람들이 모두 그녀를 따라서 그와 같은 차림을 하는 바람에 감기 환자가 끊이지를 않았다고 합니다. ‘숄’(shawl)은 ‘장식으로 어깨에 걸치는 여자용 목도리 같은 것’을 이릅니다. 순우리말로는 ‘어깨걸이’라고 합니다.

그렇다고, 조제핀이 부정적인 면만 지니고 있지는 않았습니다. 특히 ‘장미’(薔薇)라고 하면, 그녀를 빼놓고 이야기할 수가 없습니다. 그녀는 장미의 발전에 아주 큰 영향을 미친 공로자의 한 사람이 분명합니다. 그녀는 맬메이숑(Malmaison)에 커다란 장미원을 만들어 놓고 당시에 구할 수 있었던 장미란 장미는 거의 모아서 가꾸었다고 합니다.

황제인 나폴레옹이 돕지 않았다면 도저히 이룰 수 없는 일이었겠으나, 조제핀이 모은 장미 품종은 무려 2백5십여 종이나 되었다고 하며, 프랑스 국내는 물론이고 세계 여러 나라의 전문가들까지 모셔다가 장미 품종을 개량했답니다. 그뿐만 아니라, 조제핀은 당시의 유명한 화가인 ‘루튜 디루’에게 각종 장미를 그리도록 하여 장미 ‘색판화집’(色版畵集)을 출판하였는데, 이 책은 오늘 날에도 영국과 미국 등의 나라에서 거듭 출판되고 있답니다.

조제핀이 장미를 이처럼 좋아한 이유는, 나폴레옹이 정치와 전쟁으로 늘 밖에 나가 있었기에 그 무료한 시간을 장미로 채우려고 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그런가 하면, 나폴레옹이 그녀의 취미생활로 ‘장미 가꾸기’를 권했다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그러나 나는 생각이 그와는 다릅니다. 조제핀은, 기막힌 미인은 아니었지만, 꽤 호감이 가는 얼굴을 지니고 있었습니다. 직접 보지는 못했지만, 그림을 통해서 본 얼굴이 그렇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런데 그녀에게도 고민이 있었답니다. 그게 뭐냐고요? 바로 ‘덧니’입니다. 그래서 그녀는 그 덧니를 가리기 위해서 늘 장미꽃을 입 가까이에 들고 있었다는군요. 아마 그게 조제핀으로 하여금 많은 장미를 기르도록 만든 원인이 아니었나 하는 생각을, 나는 버릴 수가 없습니다.(김재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