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설 물이 끓고
김 재 황
겉으로 주전자는 점잖다. 그러나
붉은 혓바닥이 슬슬 네 엉덩이를 간질이면
참지 못하고, 마음이 끓기 시작한다.
센 콧김이 밖으로 ‘식식’ 쏟아져 나오고
뚜껑마저 들썩들썩 장단을 맞춘다.
한밤 내내 가라앉아 있던 부드러움이
놀라 깨어나서 몸을 뒤집으며 용솟음친다.
무엇으로 네 마음을 토닥거려야 하나.
다만, 너를 달랠 수 있는 건
한여름의 푸름을 안으로 감춘 잎사귀뿐
잘 마른 찻잎 한 수저에
성났던 그 마음 스르르 누그러지며
만고강산의 너그러움을 드러내게 될 터이라,
두 손으로 공손히 뜨거움을 따라놓으니
온 세상이 단번에 따뜻해진다.
녹차 향이 방안 가득 춤추듯 날고
태고의 맛이 달려 나와서 나를 맞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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