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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건 그렇고, 봄이 오면 ‘다스리기’가 시작됩니다. 제일 먼저 해야 될 일이 심경작업입니다. ‘심경작업’(深耕作業)은 ‘나무 둘레나 나무 사이의 땅을 파고 그 곳에 잘 썩은 퇴비를 넣어주는 일’입니다. 여기에는 세 가지 중요한 의미가 있습니다. 흙을 파서 흙살을 부드럽게 만들어 준다는 면이 있는가 하면, 거름을 공급해 준다는 면도 있고, 또 너무 길게 뻗어나간 늙은 뿌리를 잘라 줌으로써 새로운 뿌리가 많이 생기게 한다는 면도 있습니다.
정치도 이와 같아서, 눈에 보이지 않는 그늘진 곳에 먼저 마음을 주어야 한다는 겁니다. 나무에서 가장 기본적 근원이 되는 뿌리가 튼튼하지 못하면 작은 바람에도 쓰러지고 말게 되듯이, 한 나라에서 그 뿌리에 해당하는 농민은 나라를 지탱하는 힘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 뿌리를 다스릴 때에도 주의하여야 할 점이 있지요. 퇴비는 반드시 잘 썩은 것으로 하되, 뿌리에 직접 닿지 않게 주어야 합니다. 왜냐고요? 잘 썩지 않은 거름은 뿌리를 썩게 만들기 때문입니다. 정치에서도 이 점은 아주 중요합니다. 어려운 농민을 구제하는 국가시책에 있어서도, 그저 모든 일을 돈으로 해결하려는 즉흥적이고 형식적인 면에 그치면 안 된다는 말입니다. 불로소득을 하게 만드는 것은, 곧 욕심으로 마음을 썩게 만드는 일입니다. ‘불로소득’(不勞所得)은 ‘노동의 대가로 얻은 소득이 아닌 소득’을 말합니다. 말하자면, ‘땀을 흘려서 번 돈이 아니다.’라는 겁니다.
흙을 부드럽게 하는 일은, 사회를 편안하게 안정시키는 바와 같습니다. 그리고 너무 길게 자란 뿌리를 자르는 일은, 끝없이 자라는 농민들의 시름을 잘라 준다는 의미를 지닙니다. 그리고 잘 썩은 거름을 뿌리에 닿지 않게 주는 일에는, 농민에게도 자생력이 생기도록 간접적으로 도와야 한다는 깊은 뜻이 담겨 있습니다.
그 다음으로 중요한 작업은, 정지와 전정을 하는 일입니다. 즉, ‘정지’(整枝)는 ‘나뭇가지 가지런히 다듬기’를 이르고, ‘전정’(剪定)은 ‘가지치기’를 말합니다. 이 작업들은 2월 하순이 되면 시작됩니다. 본래 정치의 근본 뜻이 무엇입니까? 국민 한 사람 한 사람에게 골고루 밝음을 주자는 게 아닌가요? 정지와 전정의 근본 목적도, 어떻게 하면 나무의 수많은 잎사귀들에게 골고루 햇빛이 들게 할 수 있는가 하는 데 있습니다.
가지다듬기를 시작할 때, 나는 먼저 나무의 전체 모양을 생각합니다. 한 예로, ‘자연형’(自然形)을 말하자면, 원줄기를 곧게 키우고 가지의 자람과 퍼짐을 그다지 제한하지 않으며 거의 자연 상태로 가꾸는 방법입니다. 이 방법은 자유경제체재를 떠올리게 합니다. 그 원줄기에 해당하는 기간산업의 중요성은, 여기에서도 확연하게 드러납니다. ‘기간산업’(基幹産業)은 ‘한 나라의 산업에 있어서 바탕이 되는 산업’을 말합니다. 이를테면, ‘시멘트’라든가 ‘철강’이라든가 ‘에너지 산업’ 따위를 가리키지요.
이어서 가지치기로 들어가면, ‘다스림’은 절정을 이룹니다. 그 가지들 사이사이로 고르게 햇빛이 들어가도록 만들기 위한 본격적인 작업이기 때문입니다. 우선은 자란가지 중에서, 특히 길게 웃자라고, 튼실하지 못한 잎눈을 지니고 있는 가지를 잘라냅니다. 이런 가지를 볼 때마다 나는, 남이야 죽든지 말든지 자기만 잘 살면 된다는 생각을 가지고 투기와 비리를 일삼는 사람들을 연상하게 됩니다. 그런데 이런 가지를 자를 때에는, 가지의 시작되는 자리에서 바싹 잘라 내어 줌으로써 그 근본을 없애 버려야 합니다.
우리 사회를 보십시오. 사회악을 뿌리뽑겠다고 호언장담만 했지, 제대로 그 근본을 다스리지 못했기 때문에 더 많은 부조리가 생겨나는 겁니다. ‘호언장담’(豪言壯談)은 ‘분수에 맞지 않은 말을 희떱게 지껄임, 또는 그 말’을 이릅니다. 다른 말로는 ‘대언장담’(大言壯談)이라고도 합니다.
그리고 ‘교차지’와 ‘중지’와 ‘평행지’ 등의 해로운 가지들은 모두 가지치기를 실시하고, 잔가지가 무성하면 그 또한 다듬어 줍니다. ‘교차지’(交叉枝)는 ‘가로와 세로로 엇갈려 있는 가지’이고, ‘중지’(重枝)는 ‘한 곳에 돋은 여러 가지’이며, ‘평행지’(平行枝)는 ‘나란히 뻗어나간 가지’입니다. 그러므로 ‘교차지’는 ‘반목’을 상징하고, ‘중지’는 우후죽순과 같아서 즉흥적이기 때문에 십년지계도 세우기 어려운 경우와 같으며, ‘평행지’는 과도한 경쟁으로 ‘부익부와 빈익빈’에 비유됩니다. ‘반목’(反目)은 ‘서로 맞서서 미워함’을 나타내고, ‘우후죽순’(雨後竹筍)은 ‘비 온 뒤에 솟는 죽순’같이 ‘어떤 일이 한때에 많이 일어남’을 비유하여 이르는 말이며, ‘부익부(富益富)와 빈익빈(貧益貧)’은 ‘부자일수록 더 큰 부자가 되고, 가난한 사람일수록 더욱 가난해짐’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김재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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