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쥬르, 나폴레옹

(124) 딜레마에 빠진 나폴레옹

시조시인 2008. 12. 31. 20:11

(124)

   프랑스 군대가 모스크바로 들어간, 바로 그날 밤이었습니다. 그 거리가 온통 화염에 휩싸였습니다. ‘화염’(火焰)은 ‘불꽃’을 이릅니다. 불은 나흘 동안이나 계속 타올라서 모스크바는 재만 남은 아주 거친 들판으로 변했습니다. 아연실색한 나폴레옹은 러시아와 화해를 하려고 하였으나, 적은 그의 말을 청약불문하였습니다. ‘아연실색’(啞然失色)은 ‘몹시 놀라서 얼굴빛이 변함’을 말합니다. 다른 말로는 ‘악연실색’(愕然失色)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청약불문’(廳若不聞)은 ‘듣고도 못 들은 체함’을 말합니다. 다른 말로는 ‘청이불문’(廳而不聞)이라고도 합니다.

그래서 나폴레옹은 딜레마에 빠졌습니다. ‘딜레마’(dilemma)는 ‘이렇게 하기도 어렵고 저렇게 하기도 어려운, 난처한 지경’을 가리킵니다. 이런 경우를 가리켜서 ‘호미난방’이라고 합니다. ‘호미난방’(虎尾難放)은, ‘어쩌다가 호랑이의 꼬리를 잡게 되었는데, 그 꼬리를 놓기도 어렵고 안 놓으려니 난감하다.’는 뜻으로, 위험한 경지에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할 처지에 놓임’을 이르는 말입니다. 그는 고민 끝에 후퇴하기로 결정했습니다.

그 많은 희생을 치르고도 아무것도 얻지 못한 채로 모스크바에서 물러나야 한다니, 나폴레옹의 마음이 어떠했을까요? 부하들을 함지사지에 처하게 만든 자책감에 괴로워했을 터이고, 포호함포의 처지인 자신이 밉기도 했을 겁니다. ‘함지사지’(陷之死地)는 ‘위험한 지경에 빠지거나 빠뜨림’을 말하고, ‘포호함포’(咆虎陷浦)는 ‘으르렁대기만 하는 호랑이가 개펄에 빠진다.’는 뜻으로 ‘큰소리만 치고 일은 이루지 못함’을 가리킵니다.

벌써 10월이 되었습니다. 그러자 모스크바에서는 낙목한천의 계절이 닥쳐왔습니다. ‘낙목한천’(落木寒天)은 ‘나뭇잎이 다 떨어진 겨울의 춥고 쓸쓸한 풍경, 또는 그러한 계절’을 이르는 말입니다.

차가운 바람이 휘몰아치는 속에 백설이 애애한 들판을 프랑스 병사들은 고뿔과 굶주림에 괴로워하면서 후퇴를 계속했습니다. ‘애애(皚皚)하다.’는, 서리나 눈이 내려서 ‘일대가 모두 희다.’라는 뜻입니다. 그리고 ‘고뿔’은 ‘감기’를 일컫는 옛말입니다. 즉, ‘코’와 ‘불’이 합쳐져서 이루어진 말이지요. 감기가 들면 코에서 뜨거운 불이 나는 것처럼 더운 김이 나오지요? 그 때문에 ‘감기’를 ‘고뿔’이라고 불렀답니다.

고난은 그뿐만이 아니었지요. 볼장 다 본 나폴레옹 군대에게, 말을 탄 카자흐 군대의 날카로운 공격은 도둔부득이었지요. ‘볼장 다 보다.’는, ‘손 쓸 수 없을 만큼 일이 글러 버렸다.’라는 뜻으로 쓰이고 있습니다. 그러나 본뜻은 ‘필요한 물건을 사기 위해 봐야 할 장을 다 둘러보았다.’를 의미합니다. 다시 말해서 ‘자기가 이루고 싶은 일이나 하고자 하는 일을 다 했다.’는 뜻이었지요. 그런데 지금 쓰이는 말은 ‘반어적 의미’를 지니고 있으니, 도대체 요령부득입니다. ‘반어’(反語)는 ‘뜻을 강조하기 위하여, 표현하려는 뜻과는 반대되는 말’ 또는 ‘어떤 말에 빗대어서 그 반대되는 뜻을 강조하는 말’이고, ‘요령부득’(要領不得)은 말이나 글의 ‘요령을 잡지 못함’을 이릅니다. ‘요령’은 ‘사물의 요긴하고 으뜸 되는 점, 또는 그 줄거리’를 말하지요. 하마터면, ‘도둔부득’의 설명을 빼먹을 뻔하였군요. ‘도둔부득’(逃遁不得)은 ‘달아나도 피할 길이 없음’입니다. (김재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