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野渡 一片舟난/ 김 우 굉

408. 野渡 一片舟난/ 김 우 굉 [원본] 野渡 一片舟난 멷 사람 건네노라가난 닷 오난 닷 쉴 적 업시 단니다가븬 배예 明月을 싯고 절로 汎汎하나니.   [역본] 나루터 작은 배는 몇 사람을 건넸는기가자마자 오자마자 쉬지 않고 다니다가빈 배에 발은 달 싣고 자기 홀로 두둥실.   [감상]   김우굉(金宇宏1524~ 1590)은 조선 중기의 문인으로 경상북도 성주(星州) 출신이다. 본관은 의성(義城)인데 자(字)는 경부(敬夫)이며 호는 개암(開岩)이다. 중종 37년에 향시 수석 합격하였고, 1566년 별시문과에 급제해 예문관검열이 되었으며, 여러 관직을 거친 뒤에 1578년 사복시정을 거쳐 동부승지 및 대사성 등을 지내고 이듬해 병조참의 및 승지에 이르렀으나, 이수의 옥사로 파직되었으며, 60세 때 홍문..

遠山에 비 거든 後/ 김 우 굉

407. 遠山에 비 거든 後/ 김 우 굉 [원본] 遠山에 비 거든 後 前江이 살진 져긔一片 苔磯에 낫대을 빗기 들고몰래라 富春山 釣臺 이러턴동 마던동   [역본] 먼 산에 비 개이고 앞 강물이 불어난 때이끼낀 돌조각에 낚싯대를 비스듬히모른다, 부춘산 낚시터 이러한지 아닌지.   [감상]   김우굉(金宇宏1524~ 1590)은 조선 중기의 문인으로 경상북도 성주(星州) 출신이다. 본관은 의성(義城)인데 자(字)는 경부(敬夫)이며 호는 개암(開岩)이다. 중종 37년에 향시 수석 합격하였고, 1566년 별시문과에 급제해 예문관검열이 되었으며, 여러 관직을 거친 뒤에 1578년 사복시정을 거쳐 동부승지 및 대사성 등을 지내고 이듬해 병조참의 및 승지에 이르렀으나, 이수의 옥사로 파직되었으며, 60세 때 홍문관 ..

突巖은 諺傳이오/ 김 우 굉

406. 突巖은 諺傳이오/ 김 우 굉 [원본] 突巖은 諺傳이오 鰲臺난 뉘 지은고나난 닐오대 龜巖이라 하노니 落龜 呈瑞하니 네 긘가 하노라.   [역본] 내민 바윈 퍼뜨린 말, 자라 누댄 누가 지어?바로 내가 이를 두고 이르기를 거북바위물 흘려, 길조를 바쳤다니 네가 맞나 싶구나.    [김상]   김우굉(金宇宏1524~ 1590)은 조선 중기의 문인으로 경상북도 성주(星州) 출신이다. 본관은 의성(義城)인데 자(字)는 경부(敬夫)이며 호는 개암(開岩)이다. 중종 37년에 향시 수석 합격하였고, 1566년 별시문과에 급제해 예문관검열이 되었으며, 여러 관직을 거친 뒤에 1578년 사복시정을 거쳐 동부승지 및 대사성 등을 지내고 이듬해 병조참의 및 승지에 이르렀으나, 이수의 옥사로 파직되었으며, 60세 때 ..

덕수궁에서/ 김 재 황

[양구에서 서귀포까지] 편                      덕수궁에서                                               김 재 황 한창 젊을 때였던가, 바람 따라 들어가서벽오동 그늘 밑에 턱을 괴고 앉았는데참 붉게 꽃 피는 소리 내 가슴을 데웠니라. 늙고 나면 누구든지 잊는 일이 많다지만중화전 지붕 위로 구름 밖을 바라보니참 섧게 꽃 지는 소리 내 이마를 식히더라.                                                (2011년)

오늘의 시조 2024.05.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