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5/12 4

鰲臺邊 玉柱峯을/ 김 우 굉

405. 鰲臺邊 玉柱峯을/ 김 우 굉 [원본] 鰲臺邊 玉柱峯을 언니 年에 갓가셴고亭亭 疊疊하여 壁立 萬仞 하엿꼬나만일에 天柱옷 것거지면 네 바칠가 하노라.   [역본] 자라 대 옆 옥주봉은 어느 해에 세웠는가우뚝 솟고 겹이 여럿 깎은 벼랑 만 길 높이만일에 하늘 기둥 꺾이면 받칠 넌가 한단다.   [감상]   김우굉(金宇宏1524~ 1590)은 조선 중기의 문인으로 경상북도 성주(星州) 출신이다. 본관은 의성(義城)인데 자(字)는 경부(敬夫)이며 호는 개암(開岩)이다. 중종 37년에 향시 수석 합격하였고, 1566년 별시문과에 급제해 예문관검열이 되었으며, 여러 관직을 거친 뒤에 1578년 사복시정을 거쳐 동부승지 및 대사성 등을 지내고 이듬해 병조참의 및 승지에 이르렀으나, 이수의 옥사로 파직되었으며,..

문노라 버리 바회야/ 김 우 굉

788. 문노라 버리 바회야/ 김 우 굉 [원본] 문노라 버리 바회야 엇디하여 버러난다萬頃蒼波水랄 다 마시랴 버러난다우리도 人間飜覆 몬내 우서 버런노라.   [역본] 묻는다 이 바위야 어찌하여 벌렸느냐푸른 물결 그 모두를 마시려고 벌렸느냐우리도 삶의 뒤집힘 우스워서 벌렸단다.   [감상]   김우굉(金宇宏1524~ 1590)은 조선 중기의 문인으로 경상북도 성주(星州) 출신이다. 본관은 의성(義城)인데 자(字)는 경부(敬夫)이며 호는 개암(開岩)이다. 중종 37년에 향시 수석 합격하였고, 1566년 별시문과에 급제해 예문관검열이 되었으며, 여러 관직을 거친 뒤에 1578년 사복시정을 거쳐 동부승지 및 대사성 등을 지내고 이듬해 병조참의 및 승지에 이르렀으나, 이수의 옥사로 파직되었으며, 60세 때 홍문관..

가난을 파려 하고/ 김 응 정

403. 가난을 파려 하고/ 김 응 정 [원본] 가난을 파려 하고 細柳營에 돌아드니年小豪傑더리 살 이야 만테마난이내 風月 兼하야 달나기로 팔디 말디 (하여라.)   [역본] 가난을 팔까 하고 엄한 군영 돌아드니호탕한 젊은이들 사려는 이 쌓였지만덤으로 내 멋 달라기에 팔지 말지 궁리 중.   [감상]   김응정(金應鼎, 1527~ 1620)은 조선 중기의 문인이다. 본관은 도강(道康)이고 자(字)는 사화(士和)이며 호는 해암(懈菴)이다. 그는 고령임에도 불구하고 명종비인 문정왕후가 죽었을 때를 비롯하여 명종과 선조가 죽었을 때 비록 관직은 없었지만 상복을 입고 상사에 임했다. 또, 임진왜란과 정유왜란 때에는 의병장을 도왔다. 현존하는 그의 시조 작품은 ‘해암문집’ 가곡조(歌曲條)에 겨우 8수만이 전하고 있..

삼천포에서/ 김 재 황

[양구에서 서귀포까지] 편                  삼천포에서                                            김 재 황 무엇이 이곳으로 발걸음을 이끌었나,길고 먼 이야기는 바다에서 마냥 졸고이처럼 어떤 손이 날, 바람으로 밀었나. 섬들은 아이인 양 안개 속에 슬쩍 숨고하늘은 술래처럼 짙은 구름 안았는데왜 그리 이곳으로 난, 부리나케 달려왔나. 갈매기 몇 마리가 소식들을 놓고 간 후조그만 통통배들 지난 세월 되씹는가,도대체 저 연륙교는 무슨 인연 당기는지-. 불빛이 가슴 속에 뜨거움을 옮겨 주면가벼운 입술 모두 꽃인 듯이 피어나고그 누가 이곳에서 날, 못 떠나게 잡는가.                                              (2011년)

오늘의 시조 2024.05.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