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시 30편) 28. 웃고 있는 연리초 웃고 있는 연리초 김 재 황 붉은 입술이 달콤해서 나는 취했다. 감겨드는 손이 부드러워서 더욱 비틀거렸다. 날아가 버릴까 봐 마음을 항상 졸였다. 하지만 너는 내가 모르는 사이 훌쩍 떠나 버렸다. 슬픔을 견딜 수 없어서 산을 올랐을 때 너는 거기 있었다. 수줍게 꽃을 물고 웃었다. 시 2009.06.18
(다시 시 30편) 10. 놓이는 이유 놓이는 이유 김 재 황 여린 마음을 지니고 달려가면 그 앞에 다다를 수 있을까. 일곱 빛깔의 층계를 딛고 오르면 하늘나라에 이를 수 있을까. 그분은 저 높은 허공 어디에 저리 고운 사다리를 숨겨 두셨는지, 무슨 일에 쓰시려고 커다란 꽃 사다리를 마련해 두셨는지 나는 도무지 알 수가 없네. 커다랗.. 시 2009.05.27
(다시 시 30편) 2. 어둠 밟는 달맞아꽃 어둠 밟는 달맞이꽃 김 재 황 밝고도 따뜻하게 어여쁘다. 눈물 같은 이슬 떨어진 자리에서 어둠을 밟고 피어나는 꽃 그 노란 얼굴을 들고 흰 소맷자락 날리며 달마중 나가는 여인의 모습 비록 꿈속에 사는, 구름 같은 한 조각 삶이라고 하여도 사랑만은 버리지 못한다. 스란치마 끄는 네 넓은 그리움을 .. 시 2009.05.17
(자선시조 30편) 27. 내 마음에 발을 치고 내 마음에 발을 치고 김 재 황 나서기 좋아하니 꽃을 못 피우는 걸까 오히려 숨었기에 저리 환한 제주한란 그 모습 닮아 보려고 내 마음에 발을 친다. 햇빛도 더욱 맑게 조금씩 걸러 담으면 일어서는 송림 사이 산바람은 다시 불고 물소리 안고 잠드는 원시의 숲이 열린다. 반그늘 딛고 사니 모든 일이 .. 시조 2008.11.24
(자선시조 30편) 24. 히말라야를 오르며 히말라야를 오르며 김 재 황 너무나 숨차구나 홀로 오르는 발걸음 지나온 산길 위로 젖은 바람 깔리는데 그 높은 나의 봉우리 번쩍인다 빙설이---. 아무도 밟지 않은 순수의 자리를 골라 말없이 삶을 새긴 어느 설인의 발자국 아직껏 굽은 능선에 빈 고요로 남아 있다. 볼수록 아름다워라 멀리 펼친 산.. 시조 2008.11.21
(자선시조 30편) 14. 사막을 걸으며 사막을 걸으며 김 재 황 돌덩이가 부서져서 한껏 고움을 이뤘나 정녕 그 단단함이 저리 부드럽게 됐나 풍화의 긴 손놀림을 내 눈으로 확인한다. 바람이 크게 불면 눈앞에 생기는 언덕 나 혼자 오르기는 엄두가 너무 안 나고 걸음이 어려운 만큼 신기루는 쉽게 뜬다. 목마른 이곳에도 푸른 목숨이 사느.. 시조 2008.11.10
(자선시 30편) 16. 시 읽으러 시 읽으러 김 재 황 내가 들에서 데려다가 남몰래 가꾸어 온 마음 속의 작은 풀 한 포기 어느 틈에 다 자라서 꽃을 피웠는가. 가슴을 열자, 먼 곳에서 나비 한 마리 내 시 읽으러 나풀나풀 날아온다. 시 2008.10.10
(자선시 30편) 14. 혈서 혈 서 김 재 황 세상을 더듬던 손가락 끝 가장 가려운 살점 베어낸 자리에서 전신의 아픔보다 더한 꽃이 핀다. 그늘진 쪽에 서서 몇 줌 스며든 햇빛에 눈멀지 않고 오직 순수하게 펼친 무명 위에 뜨거운 마음을 적는 아, 속으로 불붙는 나무의 모습 찬바람에 붉은 꽃이 진다. 빛나던 잎에 하나 둘 피가 .. 시 2008.10.08
(자선시 30편) 9. 달빛 아래에서 달빛 아래에서 김 재 황 금강산과 손이 닿아 있는 성대리 언덕으로 달빛이 너무 많이 쏟아져서 길이 끊겼다. 어둠을 밟고 걸어가야 할 이 땅의 바쁜 사람들 우거진 풀숲처럼 서로 얽히어서 얕은 잠에 빠질 때 그는 달빛 아래에서 꽃을 빚으려고 몸을 살랐다. 길을 이으려고 시를 썼다. 시 2008.10.04
(자선시 30편) 5. 낙성대 낙성대 김 재 황 사당동에서 까치고개를 오른 후, 바라보면 알 수 있다. 어두운 하늘에서 별 하나 떨어져서 꽃다운 한 목숨 피어난 곳 거센 바람 앞에 촛불 같던 옛 나라 작은 몸 크게 나서서 굳게 지키고 그 숨결 머물러 아직도 뿌리고 있는 향기를 맡을 수 있다. 조금 더 가까이 다가가 보아라. 천 년 .. 시 2008.09.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