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4/06 4

이몸 허러내여/ 정 철

381. 이몸 허러내여/ 정 철 [원본] 이몸 허러내여 낸믈의 띄오고져 이믈이 우러녜여 한강 여흘 되다하면 그제야 님그린 내 병이 헐할법도 잇나니. [역본] 이 몸을 조각조각 냇물에 띄워 보자 이 물이 울고 가서 큰 강 여울 되고 나면 그 때야 임 그린 내 병 나을 수도 있으니. [감상] 정철(鄭澈 1536~ 1593)은 조선 중기의 문인이며 문신이다. 본관은 연일(延日), 자(字)는 ‘계함’(季涵)이고 호(號)는 ‘송강’(松江)이다. 1561년에 진사시에 1등을 하고 이듬해에는 문과 별시에 장원급제하여 벼슬길에 올랐다. 여러 관직을 지내고, 45세 때에 강원도관찰사가 되었을 때 가사문학의 대가로서의 기질을 발휘했다고 한다. 그 후 55세 때는 좌의정에 올랐고 인성부원군(寅城府院君)에 봉하여졌다. 초장을..

이려도 太平聖代/ 성 수 침

380. 이려도 太平聖代/ 성 수 침 [원본] 이려도 太平聖代 저려도 聖代太平 요지일월이요 순지건곤이로다 우리도 태평성대에 놀고가려 하노라. [역본] 여기도 좋은 시대 저기도 어진 평안 요 임금 그 세월에 순 임금 바른 세상 우리도 좋은 시대에 놀고 갈까 한단다. [감상] 성수침(成守琛 1493~ 1564)은 중종과 명종 때의 학자이다. 자(字)는 ‘중옥’(仲玉)이고 호(號)는 ‘청송’(聽松) 또는 ‘죽우당’(竹雨堂) 등이라고 한다. 기묘사화로 스승인 조광조가 처형되고 선비들이 화를 당하게 되자, 밖으로 나가지 않고 학문에만 몰두했다고 한다. 49살 때에 후릉 참봉이나 주부 및 현감 등의 벼슬에 임명되었으나 나가지 않았고, 명리를 초개같이 여겼으며 매우 효성스러웠다고 알려져 있다. 초장을 본다. ‘이려도..

榮辱이 並行하니/ 김 천 택

379. 榮辱이 並行하니/ 김 천 택 [원본] 榮辱이 並行하니 富貴도 不關터라 第一江山에 내혼자 님자되야 夕陽에 낙싯대 두러메고 오명가명 하리라. [역본] 명예 치욕 함께 가니 부자 귀함 상관없다 첫째가는 그 강산에 내가 혼자 임자 되어 저물녘 긴 낚싯대 메고 오고 가고 하겠다. [역본] 김천택(金天澤)은 시조작가 및 가인(歌人)으로 생몰년대가 밝혀지지 않았다. 그의 자(字)는 ‘백함’(伯涵) 또는 ‘이숙’(履叔)이고 호(號)는 ‘남파’(南坡)이다. 숙종 때에 포교를 지냈다고도 한다. “사람됨이 총명하고 유식하며 능히 을 알고 외워서 한갓 가객이 아니었다.”라는 평을 듣는다. ‘경정산가단’(敬亭山歌壇)의 일원으로 활동하였는데, 일종의 사설 음악 연구소로써 그 문하에서 많은 가객이 배출됐다. 초장을 본다...

이천 용학사에서/ 김 재 황

[서호납줄갱이를 찾아서] 편 이천 용학사에서 김 재 황 휘어진 길을 따라 발걸음은 가벼운데 어서어서 오라는 듯 꼬리 흔든 그 시냇물 마음을 추어올리니 절 한 채가 보인다. 그 앞의 바위 속에 불상이야 머물지만 목련이 켠 기지개로 금방 펼칠 꽃망울들 날아온 풍경 소리가 귓바퀴에 앉는다. 여기는 원래부터 물이 좋은 고장이라 긴 물소리 이끌고서 다시 오는 임의 말씀 눈으로 맞아들이며 내가 지금 서 있다. (2006년 10월 19일)

오늘의 시조 2024.04.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