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나리 그 날갯짓/ 김 재 황 [사호납줄갱이를 찾아서] 편 솔나리 그 날갯짓 김 재 황 네 활개 활짝 펴고 홰를 차는 바로 그때 검은 손이 스쳤기에 꽃송이로 변한 건가, 스스로 벗어나고자 안간힘을 쓰고 있다. 그 바람 멀리 갔고 푸른 강물 또 보채니 커다란 눈 치켜뜨며 어서 높이 날아가라 가볍게 풀어버리는 날갯짓을 보고 싶다. (2009년) 오늘의 시조 2024.04.23
외로운 바퀴벌레/ 김 재 황 [서호납줄갱이를 찾아서] 편 외로운 바퀴벌레 김 재 황 오라고 안 했어도 어디든지 가야 하니 구석지고 눅눅한 곳 골라 밟는 어스름 녘 재빠른 걸음걸이에 그 한목숨 내맡긴다. 숨어서 사는 일이 무슨 죄가 되는 걸까 그냥 찰싹 엎드려서 숨을 죽인 처지인데 왜 모두 보기만 하면 죽이려고 드는 걸까. 울 줄도 모른다니 믿을 것은 그 날개뿐 묵은 먹물 듬뿍 찍어 이미 그린 얼룩무늬 오늘은 달 따러 간다, 장대 하나 지니고. (2009년) 오늘의 시조 2024.04.22
새/ 김 재 황 [서호납줄갱이를 찾아서] 편 새 김 재 황 누구나 가슴속에 무언가를 키우느니 입을 굳게 다물고서 바위처럼 앉았어도 못 잊게 피어난 꽃잎, 말을 물고 나는 새. 불어온 북풍에다 넓게 펴고 얹은 날개 무게를 버리고서 깃털 같은 마음으로 저 멀리 가난한 나라, 꿈을 바라 사는 새. 울음은 버렸지만 서러움에 젖어들고 아득히 보채다가 갈대숲을 감싸 안는 남몰래 부르는 이름, 물빛 푸른 심상의 새. (2009년) 오늘의 시조 2024.04.21
관음죽/ 김 재 황 [사호납줄갱이를 찾아서] 편 관음죽 김 재 황 기차게 멋진 이름 지니고 사는구나, 쭉쭉 뻗은 줄기처럼 올바른 삶 지녔을까, 너에게 대자대비야 바랄 수는 없겠지만---. 축하하는 리본 달고 용달차에 실려 온 넌, 부챗살 잎 펼치고서 시원한 뜻 쌓는구나, 그늘을 잘 참음이여, 나에게도 그 반야를. (2009년) 오늘의 시조 2024.04.19
모기에 대한 견해/ 김 재 황 [서호납줄갱이를 찾아서] 편 모기에 대한 견해 김 재 황 두 날개를 지녔으며 다리들은 모두 긴데 땀내가 진할수록 참기 힘든 피의 갈증 귓가에 앵앵 소리로 대담하게 다가선다. 하는 짓을 생각하면 왕파리가 상냥하고 낮보다 더욱 밤을 좋아하니 나는 밉다, 게다가 잠자는 자도 공격하니 또 비겁해. 장마 뒤에 물웅덩이 그게 모두 살판이라 까맣게 장구벌레 제 세상을 만났을 때 너희는 절명의 위기! 박멸작전 벌어진다. (2009년) 오늘의 시조 2024.04.18
꾸꾸꾸 그 소리/ 김 재 황 [서호납줄갱이를 찾아서] 편 (동시조) 꾸꾸꾸 그 소리 김 재 황 모처럼 거닐다가 쉼터에 앉았는데 멀리 있던 비둘기가 내 앞으로 날아와서 꾸꾸꾸 소리를 낸다, 배고프단 뜻이리. 간절한 눈빛이라 빈손은 안 될 노릇 튀김 과자 하나 사서 뚝뚝 끊어 던져 주니 꾸꾸꾸 고맙다는 듯, 꾸벅대며 잘 먹는다. (2009년) 오늘의 시조 2024.04.17
그 도시락/ 김 재 황 [사호납줄갱이를 찾아서] 편 (동시조) 그 도시락 김 재 황 시골학교 다닐 적에 허리춤의 그 도시락 마음이 바쁠수록 그저 마냥 묵직했지 십 리도 훨씬 더 되는 등굣길이 정다웠지. 점심시간 될 때까지 침묵 속의 그 도시락 배고픈 느낌 전에 내 손 자꾸 이끌었지 반찬은 별것 아닌데 절로 침이 넘어갔지. 젓가락만 담겨 있는 하굣길의 그 도시락 내 걸음이 빠른 만큼 더 큰 소리 들려왔지 우리 집 저만치 뵈면 숨이 턱에 차올랐지. (2009년) 오늘의 시조 2024.04.16
우표에 담긴 소리/ 김 재 황 [사호납줄갱이를 찾아서] 편 (동시조) 우표에 담긴 소리 김 재 황 저 우표 한 장에는 저런 소리 들어 있네, 걷는 소리 뛰는 소리 자전거를 타는 소리 집배원 더운 숨결을 등에 가득 지고 있네. 이 우표 한 장에는 이런 소리 들어 있네, 바람 소리 기차 소리 갈매기가 우는 소리 우편선 힘찬 고동도 가슴 가득 안고 있네. (2009년) 오늘의 시조 2024.04.15
두만강 물길/ 김 재 황 [서호납줄갱이를 찾아서] 편 두만강 물길 김 재 황 밤마다 출렁거린 위쪽 물길 찾으려고 내 마음은 그 얼마나 힘껏 노를 저었던가, 만나면 두 팔 벌려서 안고 싶던 강이여. 저 멀리 물줄기가 가물가물 잡힐 즈음 오히려 내 가슴에 빈 갈대만 서걱댔네, 또 한 번 목이 터지게 불러보는 그 이름. 여태껏 꿈에서도 잊지 못한 물빛인데 옛 모습은 어디 두고 이리 몸이 여위었나, 말없이 두 눈 붉히며 깊은숨을 내쉰다. (2005년 7월 7일) 오늘의 시조 2024.04.14
백두산 천지/ 김 재 황 [사호납줄갱이를 찾아서] 편 백두산 천지 김 재 황 벼르고 또 별러서 겨우 날을 잡았건만 올라가니 짙은 안개 수줍은 듯 덮여 있어 마음을 적셔야 할 곳 찾을 수가 없구나. 까마득한 벼랑 아래 그 어둠은 엎드리고 가파른 비탈 따라 검은 바위 누웠는데 어쨌든 내가 부르는 이름이야 다만 바람. 두 손을 모은 뜻이 하늘 끝에 닿았는지 한쪽 살짝 들치고서 보여주는, ‘오! 그 살결’ 내 가슴 울컥 뚫리네, 십 년 묵은 체증까지. (2005년 7월 6일) 오늘의 시조 2024.04.13